삼소회 성지순례를 마치며 “예수님 만세… 부처님 만세”

  • 입력 2006년 2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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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서…삼소회 회원들이 19일 예루살렘 시내를 가로지르는 8m 높이의 테러방지용 분리장벽을 더듬으며 세계의 모든 장벽이 사라지고 여러 민족이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기원하고 있다. 예루살렘=윤정국 문화전문기자
예루살렘에서…
삼소회 회원들이 19일 예루살렘 시내를 가로지르는 8m 높이의 테러방지용 분리장벽을 더듬으며 세계의 모든 장벽이 사라지고 여러 민족이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기원하고 있다. 예루살렘=윤정국 문화전문기자
《불교의 비구니, 가톨릭과 성공회의 수녀, 원불교의 교무 등 한국 여성 수도자들로 구성된 삼소회 일행 16명은 22일 바티칸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알현한 것을 끝으로 세계 종교 성지순례를 마치고 2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5일 이들을 따라 동행 취재에 나설 때만 해도 기자는 궁금증을 떨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과연 수도자들이 다른 종교의 성지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결론적으로 그 같은 궁금증은 18박 19일간의 여정을 마치면서 말끔히 해소됐다.》

인도 방문 첫날 바라나시에 있는 한국 사찰 녹야원(鹿野苑)에 여장을 풀고 방을 배정할 때 가톨릭의 공마리아 수녀는 ‘가톨릭의 수녀는 타 종교인과 같은 방을 써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깨고 비구니, 교무와 함께 한방을 썼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문제가 생길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종교 간 화합이란 삼소회의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에 이를 실천했다”며 “내 스스로 이를 적극 해명하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날밤 잠자리에 들 때 모기가 하도 극성을 부려 마리아 수녀가 모기를 잡자 교무가 “왜 모기를 잡느냐”고 말렸다(원불교도 불교처럼 윤회설을 믿기 때문에 일체의 동물이나 곤충을 죽이면 안 된다). 마리아 수녀는 그 뒤로는 모기에 물려도 모기를 잘 잡지 않았다.

바라나시의 사르나트 성지에서 스님들이 주축이 돼 다멕 스투파(탑)를 도는 탑돌이를 했을 때도 수녀들은 어떻게 할지 잘 몰라 앞의 스님이 걸어간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가며 보폭을 맞춰 불교 예식에 참가했다. 탑에 절을 올린 스님, 교무들과는 달리 앉아서 가볍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티베트의 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알현한 일에 대해서도 회원들은 종교의 차이를 떠나 무척 감격했다. 마리아 수녀는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달라이 라마의 책 ‘용서’에 나오는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자선’이라는 구절을 음미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았던 적이 있다”며 “그분과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그 단순한 공간적 체험이 긴 여운을 안겨주었다”고 말했다. 존재 자체로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 그저 아무 말이 오가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으로도 힘든 이들에게 용기를 갖게 해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자신이 살아야 할 삶이라고 다짐하는 마리아 수녀는 인도를 떠나며 국내의 한 지인에게 부친 편지의 첫머리를 ‘예수님 만세, 부처님 만세’로 시작하며 동료 스님들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22일의 교황 알현에 앞서 18∼19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나사렛, 20∼21일 이탈리아의 로마와 아시시 방문에서도 삼소회 회원들은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 올리브산(감람산)에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기도의 전범으로 주기도문을 가르쳐 준 터에 세워진 ‘주의 기도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수녀들은 성지(聖地)에서 만난 한글 주기도문 앞에서 성가를 부르며 감격했고, 다른 종교의 회원들은 침묵으로 경의를 표했다. 불교의 본각 스님은 “신을 경배하려는 사람들의 기운이 서려서인지 성스러운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삼소회 회원들은 예수가 붙잡히기 직전 “아버지,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둬주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마지막으로 기도했던 겟세마네 동산에 세워진 겟세마네 성당에서도 공동기도를 올렸다. 원불교의 최형일 교무는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기도했던 장소를 둘러보니 그 넉넉한 사랑을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 눈물이 난다”며 “인간을 사랑한 모든 성자들의 뜻은 다 똑같다”고 말했다.

삼소회의 이번 순례는 종교가 전쟁과 갈등의 불씨를 제공하는 지구촌에서 종교의 근원으로 돌아가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해 줬다.

바티칸=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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