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두번째 추기경 탄생]교황 “니콜라오” 8번째 호명

  • 입력 2006년 2월 2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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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추기경 명단 발표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매주 수요일 오전에 갖는 일반인 접견시간에 이뤄졌다. 22일 교황이 8000여 명의 청중이 운집한 대형홀(바오로 6세 홀) 중앙단상 정중앙의 의자에 앉은 채 이름을 발표해 나가자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은 환호하고 박수 치며 환영했다.

교황이 15명 중 8번째로 낭랑한 목소리로 “니콜라오 정진석 대주교”라고 발표하자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한국 여성 수도자들 모임인 삼소회 회원들은 기쁨에 들떠 환호했다. 곽베아타(포교베네딕도수녀회 소속) 수녀는 “오랫동안 고대하던 제2의 한국인 추기경 서임 발표를 현장에서 지켜보게 되어 너무 감격스럽다”고 말했고 본각(중앙승가대 교수) 스님은 “신임 추기경의 탄생을 축하한다”며 “새 추기경은 앞으로 종교 간의 대화와 화합에 앞장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의 외교관과 성직자들은 삼소회 회원들에게 축하한다는 뜻을 표했다.

새 추기경 발표 후 교황은 휠체어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불치병 환자들에게 일일이 강복했으며 이어 청중의 맨 앞줄로 내려와 순례객들을 격려했다. 이때 곽 베아타 수녀가 “삼소회 회원들이 세계 평화를 위해 이곳까지 왔다”고 말하자 교황은 고개를 끄덕여 이해를 표시했다.

이날 현지 언론을 통해 새 추기경 임명 예상이 보도된 탓인지 순례객들이 보통 때보다 훨씬 많이 몰려 교황청 앞 성베드로 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길게 줄지어 선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부터 교황청 방문을 교섭해 허락받아 놓은 삼소회 회원들은 줄을 서지 않고 교황청 ‘타종교와의 대화위원회’ 위원장인 마이클 피츠제럴드 대주교의 안내로 일반인 접견을 위한 바오로 6세 홀로 입장할 수 있었다.

교황은 이날 오전 10시 40분경 베드로대성당 입구 옥외에서 각국의 순례객들을 맞이한 뒤 웅장한 파이프오르간 소리에 맞춰 10시 50분경 실내로 들어왔다. 하지만 정문을 통해 중앙단상으로 걸어가기까지 10분이나 걸렸다. 교황은 연도에 늘어서 환호하는 순례객들에게 일일이 손을 들어 답례하거나 손을 내밀어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이윽고 교황은 정중앙에 좌정한 뒤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간단한 강론을 했다. 이어 교황과 추기경단은 번갈아 가며 세계 각국에서 온 순례객들을 이탈리아어 영어 독일어로 호명했으며 거명된 순례팀은 10∼20명씩 자리에서 일어나 깃발을 들고 환호하거나 노래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다. 마치 축구경기장을 연상케 하는 축제 분위기였다.

“한국에서 온 여성 수도자들의 모임”으로 호명된 삼소회 회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 치며 환호했다. 순례객들을 격려하는 이 행사가 한 시간가량 진행되다가 마지막 순서에 교황이 자리에서 앉은 채 A4용지 한 장을 차분하게 읽어나갔다. 바로 새 추기경 명단 발표였다.

이에 앞서 피츠제럴드 대주교는 삼소회 회원들에게 종교 간 대화와 평화를 위해 교황청이 40년 동안 벌여 온 일들을 소개하며 삼소회의 활동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모두 다른 종교에서 종사해 온 분들이 세계 평화를 위해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성지를 순례하는 일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바티칸 간 삼소회 회원, 역사적 순간 함께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22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정진석 추기경의 서임을 발표한 자리에는 한국의 불교 가톨릭 원불교 성공회 여성 수도자 모임인 ‘삼소회(三笑會)’ 회원들이 있었다.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을 발표하는 역사적 현장에 종교를 초월한 한국 여성 수도자들이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을 두고 삼소회 주변에서는 “하늘의 섭리가 아닌가” “교황청의 배려인가” 하는 농담이 오고갈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해 12월부터 성지 순례를 추진해 온 곽베아타 수녀는 “우연히 일정이 맞아떨어진 것일 뿐”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마치 미리 알고 일정을 짠 것처럼 됐지만 삼소회 회원들은 정진석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에 대해 교황청으로부터 어떠한 언질도 받지 못했다.

비구니 5명, 수녀 5명(가톨릭 3, 성공회 2명), 원불교 교무 6명 등 16명으로 구성된 삼소회 회원들은 6일부터 18박 19일 일정으로 세계 성지순례를 하던 중이었다. 이들은 22일 교황 접견을 마지막으로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바티칸시티=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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