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7년 獨작가 하인리히 뵐 출생

  • 입력 2005년 12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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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요? 그렇지요! 작가도 경우에 따라서는 복수를 하고 싶어 하지요!”

전후 독일의 ‘폐허문학’을 대변했던 작가 하인리히 뵐. 그가 1974년 발표한 소설 ‘카타리나 브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일종의 문학적 보복이었다. 신문 때문에 그가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한 반격이었다.

1972년 ‘슈피겔’지(誌)에 극좌단체인 바더 마인호프를 옹호하는 듯한 글을 썼다가 된서리를 맞았던 뵐.

상업주의적 대중지의 상징이었던 ‘빌트’지(紙)의 공격은 매서웠다. ‘빌트’는 뵐을 무정부주의자들의 폭력에 동조하는 자로, 심지어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에 비유했다.

소설 ‘카타리나…’는 선정적 저널리즘의 정보 조작과 허위 보도, 그리고 신문 헤드라인의 폭력이 어떻게 하여 ‘사형(私刑)’에 이르는지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언론이 폭력을 행사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그들은 한 가지 사안을 주장한다. 석 줄을 넘어서면 이미 그것은 뒤집을 수 없는 진실이 된다. 그리고 다음에 그 진실 위에서 다시 어떤 것이 주장된다.”

‘카타리나…’는 뜨거운 논쟁 속에 일약 베스트셀러로 떠오른다. 이때 계열사인 ‘벨트 암 존탁’에 압력을 넣어 베스트셀러 목록을 발표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빌트’의 경영진이었다. 뵐은 쓴웃음을 지었다. “참으로 위험한 것은 회개를 모르는 인간의 오만이다!”

전후 독일 ‘폐허문학’을 대변했던 뵐.

그는 ‘도덕가 뵐’ ‘국가의 양심’으로 불린다. 보수주의자에서 ‘테러의 대부’ 사이를 오가며 진정한 시민으로서 언제나 도처에 간섭했다. 바로 그 때문에 ‘탁월한 작가 뵐’이 ‘탁월한 시민 뵐’의 뒷전에서 사라질 뻔했다고 비평가들은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징병돼 ‘자기편이 패전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어야만 했던 무서운 운명’에 처해졌던 뵐.

그에게 문학은 진실이고, 진실은 문학이었다. “소설의 허구와 역사적 현실은 모순되는 게 아니라 진실을 추구하는 상이한 두 지평이다. 둘은 멀리 떨어져 동일한 대상을 향해 나아간다.”

언어에 대한 그의 외경심은 깊다. 그는 줄곧 비옥한 토양에 좋은 언어를 심고 가꾸는 데 애써 왔다. 나치 언어는 마치 그들이 남긴 폐허와 같았으니 거기에서는 양심도, 인간의 존엄성도 자랄 수 없었다.

어느 작가든 자신을 배신하는 자는 그의 언어 역시 배신하게 된다며 뵐은 경고한다. “우리는 인쇄된 행간 사이에 세상을 공중 폭파하기에 충분한 다이너마이트를 쌓아둘 수 있습니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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