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권혁웅/“미키마우스와 함께”

  • 입력 2005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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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마우스와 함께

권혁웅

미키, 밤마다 머리 위에서 머리 속에서 놀던

미키, 내 대신 천장에 오줌을 지렸던

그러던 어느 날, 장롱을 넣기 위해 천장을 뜯었더니

중원(中原)에 진출한

미키,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시집을 읽던

미키, 옷장을 열면 조그맣고 말갛고 분홍빛을 띤

바글바글한 새끼들

미키, 쥐약을 놓았더니 옛다, 너 먹어라

삼 개월 된 강아지의 사지를 쫙 펴주었던

미키, 어느 날 화단 뒤에 숨어 오도 가도 못하고

뜨거운 물을 흠뻑 뒤집어쓴

미키, 마침내 연탄집게를 입에 물고

대롱대롱 딸려 올라온

그래서 우리에게 막다른 골목이 어디인지 가르쳐준

시집 ‘마징가 계보학’(창비) 중에서

고구마 통가리에서 생고구마를 오독오독 갉아먹던, 뒤웅박 옆에 매달린 옥수수 씨앗을 알 빠진 브로치로 만들어 놓던, 가구며 옷이며 책이며 사정없이 쏠아 놓던, 두두두― 천장을 가로지르며 날마다 세계지도를 바꾸어 그리던, 더러 가난한 쌀독에 갇혀 빙글빙글 맴돌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저들이 들은 까닭에 절대로 살려줄 수 없던, 미국쥐 미키가 커다란 아버지 신발을 신고 흰장갑 끼고 브라운관을 누비며 출세를 했어도 여전히 천덕꾸러기 서생원으로 살던,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고 더러 희망을 주기도 했던, 사람 위에 사람 살기 전 사람 위에 살던 저것.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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