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고영 ‘달팽이집이 있는 골목’

  • 입력 2005년 11월 2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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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귓속에는 막다른 골목이 있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 밀려난 작은 소리들이

따각따각 걸어들어와

어둡고 찬 바닥에 몸을 누이는 슬픈 골목이 있고,

얼어터진 배추를 녹이기 위해

제 한 몸 기꺼이 태우는

새벽 농수산물시장의 장작불 소리가 있고,

리어카 바퀴를 붙들고 늘어지는

첫눈의 신음소리가 있고,

좌판대 널빤지 위에서

푸른 수의를 껴입은 고등어가 토해놓은

비릿한 파도소리가 있고,

갈라진 손가락 끝에

잔멸치 떼를 키우는 어머니의

짜디짠 한숨소리가 있고,

내 귓속 막다른 골목에는

소리들을 보호해주는 작고 아름다운

달팽이집이 있고,

아주 가끔

따뜻한 기도소리가 들어와 묵기도 하는

작지만 큰 세상이 있고,

- 시집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천년의 시작) 중에서

그믐밤처럼 캄캄하기만 한 줄 알았더니, 저이의 귓속 막다른 골목길 따라 들어갈수록 환하고 아늑하기만 하네. 언 몸 녹이어 주는 장작불 소리가 있고, 파도소리 머금은 고등어와 멸치 떼들도 있고, 더러 따뜻한 기도소리도 들려오니 그만하면 충분히 겨울 나겠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밀려난 소리들이 모이는 달팽이집이 있으니, 저마다 꽁꽁 언 겨울 심장들 저곳에서부터 되살아나 장차 눈부신 봄물 뿜어 올리겠네. 마침표 대신 찍은 쉼표 하나, 끝나지 않은 희망마저 가리키고 있으니.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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