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수묵에 서린 천재의 광기… 예술혼… ‘서위’

  • 입력 2005년 10월 29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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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위의 발묵십이단권의 첫번째 그림.
서위의 발묵십이단권의 첫번째 그림.
◇ 서위/저우스펀 지음 서은숙 옮김/391쪽·1만9000원·창해

북학파 실학자 박제가의 기행산문 ‘묘향산소기(妙香山小記)’를 보면 “새벽에 일어나 등불을 켜고 원중랑(袁中郞)이 지은 ‘서문장전(徐文長傳)’을 읽었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이 한 문장에서 우리는 시대와 불화한 3명의 지식인을 동시에 만난다. 중국이 인정한 명문장가에 개혁의 웅지를 갖춘 지식인이었으나 서얼 출신이라는 이유로 좌절한 박제가. 그가 흠모한 명 말의 문인으로 개성적 표현을 최우선시한 중랑 원굉도. 그리고 원굉도가 찾아낸 광기어린 천재 서위(徐渭·1521∼93)다.

서위는 45세에 집안 벽에 박힌 대못을 뽑아 자신의 귀를 찌르는 엽기적인 자해를 했고 결국 정신착란 끝에 쇠스랑으로 후처를 죽인 인물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서위의 삶을 화가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전기소설이다.

서위의 포도도. 사진 제공 도서출판 창해

빼어난 문장력 때문에 자(字)인 문장(文長)으로 더 유명한 서위의 삶은 자신의 귀를 잘랐던 불운의 천재 고흐의 삶만큼 극적이다. 강남 땅 소흥(紹興)의 유복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열 살 이전에 사서삼경을 떼고 거문고 연주법을 터득한 천재였다. 스승 없이 유불선에 모두 통달했고, 병법과 무술에도 능통했으니 문무겸전의 천재가 따로 없었다.

일신의 재주라 하기엔 너무 비범했던 탓일까. 그는 정상인으로선 견디기 힘든 불우한 삶을 살았다. 그는 여종의 아들이었으나 적모(嫡母·서자가 아버지의 정실을 일컫는 말)가 데려다 키웠다. 적모는 서위가 열 살 무렵 자신의 출생 비밀을 눈치 채자 그의 친모인 여종을 멀리 팔아 버렸다. 유년시절의 이런 상실감은 출생에 대한 자격지심과 결부돼 평생 그를 괴롭혔다. 그가 수없이 낙방을 거듭하면서도 관직에 초연해지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박제가가 왜 그토록 서위의 생애에 매료됐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세상은 서위를 단 한번도 알아주지 않았고, 그가 진정 사랑한 첫 부인은 19세에 요절했다. 또 그를 진정 알아주고 그 후견인이 돼 줬던 병부시랑 호종헌은 반역죄로 몰려 처형당했다. 결국 그는 광기에 사로잡혀 살인자로 전락한다.

서위가 후대 ‘중국의 표현주의 화가’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악조건 때문이었다.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붓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단 한번도 그림을 배우지 않았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라운 작품을 그려 냈다. 이처럼 반어적 삶이 다시 있으랴 하며 책갈피를 넘기다 만나게 되는 서위의 파격적이면서도 섬세한 수묵화들은 ‘인생은 짧으나 예술은 길다’라는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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