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쇼팽 선율에 ‘콩쿠르 폐인’ 됐어요

  • 입력 2005년 10월 22일 03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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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피아니스트 임동혁 다음 카페 (cafe.daum.net/pianisthyuk)
사진 제공 피아니스트 임동혁 다음 카페 (cafe.daum.net/pianisthyuk)
《“동혁 오빠! 어쩜 이럴 수 있죠…. 이런… 연예인의 광팬에게나 강림하시는… ‘열광신’ 지대로 강림…. 지금도 숨이 떨리고….”(ID 롬이♥) 인터넷에 ‘콩쿠르 폐인(마니아)’들이 등장했다. 진원(震源)은 이달 초부터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고 있는 쇼팽 콩쿠르.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이 피아노 콩쿠르에 올해는 독일 하노버국립음대에 재학 중인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임동민(25) 동혁(21) 형제와 손열음(19·한국예술종합학교 4년) 씨가 출전해 3명 모두 결선 진출자 12명 안에 들었다.》

쇼팽 콩쿠르 역사상 한국인의 결선 진출은 처음 있는 일. 결선이 진행된 18∼21일(현지 시간) 클래식 인터넷 동호회 사이트는 매일 새벽녘까지 ‘박찬호 메이저리그 경기 중계’를 방불하게 할 정도로 들썩였다.

○클래식에도 팬덤문화 생겨

쇼팽 콩쿠르의 인터넷 생중계 붐을 일으킨 곳은 포털사이트 ‘다음’의 임동혁 팬카페. 이달 초 쇼팽 콩쿠르 본선이 시작된 후 회원이 한꺼번에 6000명가량 늘어 현재 회원 수는 3만5000여 명이다. 회원들은 ‘동동 브러더스’(임동혁-동민 형제의 애칭)와 손 씨를 비롯해 각국 참가자들의 연주를 인터넷(www.itvp.pl/chopin/i.tvp/) 생중계로 지켜본 뒤 즉각 댓글로 평을 단다. 따라서 새벽 생중계 시간이면 으레 서버가 느려지고, 아예 접속이 안 되기도 한다.

카페 운영자 중 한 사람인 이은아(22) 씨는 “2년 전 임동혁 씨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출전했을 때도 인터넷 생중계를 했지만 운영진 몇몇만 보는 수준이었는데, 이번에는 한국인이 3명이나 결선에 진출해 관심이 폭증했다”며 “클래식 저변이 넓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 콩쿠르가 새로운 팬덤 문화를 만들어 낸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넷 감상은 실시간 중계에, 다시보기도 가능한 만큼 연주장에서 지켜보는 것과는 다른 상호교류형의 관객 반응을 만들어낸다.

19일 결선 무대에서 임동혁 씨가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의 1악장을 마치고 피아노 음에 미세한 차이를 느껴 연주를 중단하자 동호회원들은 크게 술렁였다. 조사 결과는 피아노 내부에 조율할 때 썼던 기구가 남겨져 문제를 일으킨 것.

“설마, 주최 측 농간은 아니겠죠”(B boy)라는 의혹 제기부터 “심장이 마비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사이가 끊기고도 2, 3악장의 몰입, 정말 눈물 나도록 아름다웠다”(안성희)는 평까지 누리꾼들은 콩쿠르의 원격 감시자 역할을 한다.

○국가대표 경기처럼 ‘대∼한민국!’을 외치다

누리꾼 클래식 팬들이 쇼팽 콩쿠르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결선 진출 12명(일본 4, 한국 3, 폴란드 2, 미국 1, 러시아 1, 홍콩 1명)의 연주를 마치 스포츠경기처럼 즐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 클래식’(www.goclassic.co.kr)의 누리꾼 이지우 씨는 “마치 국가대표팀 축구경기나 쇼트트랙 경기처럼 흥분된다. 대∼한민국!”이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현재 바르샤바에 머물고 있는 동혁-동민 형제의 아버지 임홍택 씨는 “폴란드 관객들은 자국 출전자의 연주에 기립박수를 보내고, 일본도 200여 명의 관광객과 취재진, 대사관 측 인사들이 커튼콜을 유도하는 등 조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한국의 누리꾼들이 멀리서나마 한국 피아니스트들에게 힘을 많이 보태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생중계가 그동안 권위 있는 심사위원들의 결정에 의존하던 클래식 콩쿠르의 관행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예견도 있다. 음악평론가 장일범 씨는 “인터넷 콩쿠르 생중계는 전 세계 사람들의 반응까지 심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만든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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