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미술이 通한다?…영화-문학 이어 미술계에도 엽기

  • 입력 2005년 10월 18일 03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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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묻힌 맨살의 죽은 쥐들이 방안을 솜처럼 떠다녔다.… 숨을 곳을 찾지 못한 벌레들은 아이들의 벌린 입속으로 드나들었다.’(편혜영 소설집 ‘아오이 가든’ 중)

‘엽기 발칙 상상력’의 시대다. 영화계엔 핏빛 포스터가 난무하고, 문학 작품에는 젊은 작가들의 그로테스크한 묘사들이 횡행한다. 이제 미술 전시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지난주 일제히 개막한 주요 갤러리나 미술관의 전시들에는 신체를 마치 고깃덩어리처럼 표현한 조각 작품이 나오고, 작가들의 실제 섹스 장면을 노골적으로 드로잉한 작품들까지 등장했다.

우선 내놓는 작품마다 파격성 때문에 화제를 몰고 다니는 현대 미술계의 문제작가 매튜 바니 전(서울 용산구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2006년 1월 8일까지·02-2014-6522·일반 7000원, 초중고교생 4000원)은 포스터만 해도 섬뜩하다. 물과 하얀 석유 젤리가 바닥에 찰랑거리는 방에 모피로 된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남녀가 키스를 하고 있는데 두 사람의 손에는 끔찍하게도 큰 고래잡이 칼이 쥐여 있다.

이번 전시 출품작은 무려 2시간 25분짜리 영상작업인 ‘구속의 드로잉9’. 일본 포경선 위 갑판에서 고래를 상징하는 바셀린 덩어리의 주조와 해체 작업이 벌어지고 작가인 매튜 바니와 그의 부인인 아이슬란드 출신 록 가수 비요르크가 모피로 된 전통 일본의상을 입고 혼례의식을 벌인다. 그런데 이들의 손에는 큰 고래잡이 칼이 들려 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상대의 하반신을 칼로 잘라내기 시작하자 번들거리는 꼬리가 나오고 목덜미에 고래 숨구멍이 생기면서 두 사람은 고래로 변한다.

전시장에는 영상작업에 사용된 조각, 설치, 드로잉, 사진들도 전시된다. 오늘날 산업원료(바셀린)의 근원이 고래 기름에서 유래한다는 것에서 착안, 발굽 달린 네발의 육지 포유류가 고래의 조상이라는 이론을 은유해 생성과 소멸의 순환구조를 보여 주고 싶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 미술관에서 11월 12일까지 열리는 중견 작가 ‘정복수’전(02-736-4371·일반 1000원, 어린이 500원)에 선보이는 작품에도 사지가 절단되고 내장이 드러난 피투성이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나무나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일으켜 세운 입체에서부터 그림에 이르기까지 온통 훼손된 몸, 징그러운 신체뿐이다. 아이들이 장난을 하듯 인간의 몸을 인형처럼 짓이기며 갖고 논 듯하다.

몸을 표현하고는 있지만 전시 제목은 ‘마음의 일기’. 미술평론가 박영택 씨는 “세상 모든 것에서 수신되어 온 인간과 관련한 잔혹한 사건 소식들을 접하고 이를 작업으로 끌어내고 있는 작가는 인간의 복수와 애증을 작업을 통해 대체하고 있다”고 평했다.

경기 평택시 비전2동에 새로 문을 연 갤러리 베아트가 개막 첫 전시로 택한 한효석의 ‘불평등의 균형’(031-654-4642·29일까지·무료)에도 끔찍한 반인반수의 조각 10여 점이 나온다. 얼굴을 잔뜩 찡그린 남자의 몸은 돼지. 그러나 마치 정육점에 걸려 있는 것처럼 배가 좍 갈려 천장에 걸려 있다.

몸에 대한 이 같은 천착은 비록 앞서 소개한 학대나 잔혹 콘셉트와는 다르지만 ‘섹스’라는 가장 사적인 부분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영국인 커플작가 팀 노블과 수 웹스터의 작품과도 일맥상통한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국제갤러리에서 11월 7일까지 열리는 ‘섹스의 즐거움’(02-735-8449·19세 이상 관람·무료)은 실제 자신들의 섹스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40점이 나온다. 성기나 체모의 표현이야 이제 영화나 인터넷에서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연필 드로잉이 주는 느낌은 또 다르다.

사비나 미술관 이명옥 관장은 “미술작품 역시 시대의 표현”이라며 “언뜻 보기엔 혐오스럽고 파격적인 작품들인데 보면 볼수록 이상한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을 보면, 지금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의 내면 속에 존재한 증오나 미움의 감정이 투영돼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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