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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9월 3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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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그려진 소녀처럼 단발머리에 교복 차림으로 공부하다가 이민 가시는 부모님을 따라 얼떨결에 뉴욕으로 건너갔습니다. 너무 힘들었고, ‘왜 이렇게 먼 곳에 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특히 영어는 지금도 ‘공부하면서’ 살고 있는 셈이에요. 영어를 하면서도 일단 머릿속에선 먼저 한국어로 반응하고 있다는 걸 나 스스로 느끼곤 한답니다.”
그러나 그가 ‘통역사’를 펴낸 뒤 미국 언론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였다. “작가가 빚어내는 자그맣고 아련한 슬픔이 전율적이다.”(뉴욕타임스 북 리뷰) “문장이 빼어나며, …광채가 있고, 도취시킨다.”(퍼블리셔스 위클리) 뉴욕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등지에서 셀 수도 없을 만큼 사인회와 낭송회를 가졌다고 한다.
‘통역사’에는 스물아홉 살의 뉴요커리안 수지 박이 나온다. 그녀는 통역일에 뛰어들면서 몇 년 전 숨진 아버지의 사인이 사실은 강도 살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소설은 그녀가 진실을 파고드는 과정을 미스터리식으로 다뤘다. 수지의 아버지는 딸들에게 늘 “미국에서 살아도 한국인이란 걸 잊지 말라”고 얘기해 왔지만 정작 자신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국 시민권부터 따내려고 했다. 워낙 이민 생활이 힘들고 생활고가 뼈저렸기 때문이다. 그는 이 와중에 극단적인 원한을 사기도 하지만, 끝내 밝혀진 범인은 참 예외적인 인물이다. 그 범행 동기를 인간적인 것이라고 해야 할지, 엽기적인 것이라고 해야 할지 읽는 사람마다 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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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람들의 미국 이민이 지난해로 100년이 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민 가서 사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새벽까지 영어 공부하느라고 제게는 소녀 시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컬럼비아대 버나드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2000년 첫 작품집 ‘축복받은 집’으로 단숨에 퓰리처상을 거머쥔 인도계 여성 작가 줌파 라히리가 선배다. 김 씨는 “책이 나온 뒤 컬럼비아대에서 전 신입생을 대상으로 ‘통역사’를 읽게 했는데 눈물이 핑 돌 만큼 고마웠다”고 말했다. 지난해 헤밍웨이상 후보(3명)에 오른 덕분에 올봄 펜클럽 지원으로 와이오밍 주의 작가스튜디오에 체류하며 글을 썼다.
그의 부모는 뉴욕 인근 뉴저지에 산다. 미혼인 그는 맨해튼에 떨어져 산다. “곁에 있으면 부모님이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언니 서니 김은 주목받는 화가로 서울에 살고 있으며 내년 1월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이번 책 표지의 소녀 그림은 언니가 그린 것이다.
그는 “새 작품을 이미 끝냈다. 교포 사회에 대한 것이다. 아마 내 평생의 테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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