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선죽교…박연폭포…55년만에 개성 문 활짝

  • 입력 2005년 9월 9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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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의 진산인 천마산의 깊은 골짜기에 숨겨진 낙차 37m의 박연폭포. 계곡으로 들고 나는 햇빛에 따라 물빛이 수시로 바뀌는 용소(고모담) 왼편으로 용바위가 보인다. 개성=조성하 여행전문기자
개성의 진산인 천마산의 깊은 골짜기에 숨겨진 낙차 37m의 박연폭포. 계곡으로 들고 나는 햇빛에 따라 물빛이 수시로 바뀌는 용소(고모담) 왼편으로 용바위가 보인다. 개성=조성하 여행전문기자
그리도 가까울 줄이야. 개성 시범 관광(8월 26일)을 다녀온 이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임진강변 파주의 장단 콩 마을. 예서 강을 건너 1번 국도(신의주∼목포)로 민통선을 통과해 개성으로 향한다. 판문점 가는 길이 가지를 치는 군내 삼거리. 개성까지 꼭 18km다. 내질러 차로 달리면 10분에 닿을 지척. 물론 비무장지대 철책이 없을 경우다. 지금은 남북 양측의 출입사무소를 차례로 통과하느라 꼬박 한 시간 반이 지체된다.

사람들은 묻는다. 개성관광이 가볼 만하냐고.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물론, 꼭 가보시라. 무릇 관광이란 볼거리가 우선.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느낌이다. 느낌까지 좋다면 그곳은 무조건 가볼 일이다.

개성은 느낌이 좋다. 예를 들면 이렇다. 무릉도원이나 샹그리라같은 극단의 이상향은 아니어도, 꿈에 그리던 곳을 찾았을 때 밀려오는 신비감. 아니면 어릴 적 살던 집을 수십 년 만에 찾았을 때나 골목에서 기억의 파편과 일치하는 대문의 낙서같은 것을 찾았을 때 갖는 푸근함….

개성 시내의 맑은 개울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선죽교. 작은 사진은 다리 바닥에 있는 붉은 자국.

개성시내에 들어서면서부터 그 느낌이 온다. 낡고 허름해도 잘 정비한 키낮은 주택과 건물, 도로(2차로)만큼 널찍해 여유롭기만 한 보도, 그 길로 30여 년 전 내가 신던 운동화를 신고 걷고 있는 행인들. 타임머신을 타고 어릴 적 기억 속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행여 자전거가 다칠 세라 길턱에 이르면 안장에서 내려 앞바퀴를 들고 조심스레 오르내리는 이들, 오가는 차량 없어 휑하니 빈 도로에 감도는 고즈넉한 평화로움, 맑은 물 개천에서 발가벗은 채 멱감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창문 틈으로 이방인의 버스행렬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주민들의 총총한 눈망울 등등.

개성과 조우는 이렇게 시작된다. 갑자기 시곗바늘을 30년 전으로 되돌려 놓은 듯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유쾌한 착각.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공간에서 느끼는 호젓함. 이것이야말로 개성관광의 진수며 지구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매력이다.

고려와 조선, 두 왕조를 두루 만나게 되는 개성. 조선과 한양을 잉태한 곳이 바로 여기 아닌가. ‘꿈 몽’(夢)자 돌림의 정씨 가문 두 남자(정몽주와 정몽헌)를 700년 터울로 역사에 등장시킨 현장이기도 하다.

관광길에 들른 개성시내 선죽교와 성균관(고려박물관), 숭양서원. 손바닥만 한 개성 시내에서 이 세 곳은 지척 간이다. 길이 6.67m의 돌다리 선죽교는 ‘하여가’를 부르며 조선 창업에 동참을 권유했던 이방원이 ‘단심가’로 단호하게 거절한 충신 정몽주를 살해한 현장이다.

이리하여 조선은 태어나고 그 기틀은 역성혁명의 철학을 제공한 정도전에 의해 다듬어진다. 성균관을 찾아봄은 이 대목에서 중요하다. 양극단의 길에 선 정몽주와 정도전. 그러나 두 사람은 목은 이색을 사사하며 동문수학하던 학우다. 그 성균관은 당시 스승과 제자가 두루 어울려 주자를 강학하던 학문의 전당이고.

선죽교 돌바닥의 붉은 흔적은 실재한다. 충신의 피가 밴 흔적이라며 너도나도 찾아보지만 사실은 철 성분의 산화 흔적에 불과하다. 성균관 역시 옛 모습 그대로다. 이 중 명륜당 등은 고려박물관으로 쓰인다. 고려청자와 고려인의 세계 최초 금속활자 원본 한 개가 관심을 끈다.

숭양서원은 정몽주의 옛 집터에 지은(1573년) 조선시대 교육기관. 현재는 고려 문신을 배향 중이다. 계단식 건축물의 맨 꼭대기 사당에 정몽주의 초상이 모셔져 있다.

개성관광의 백미는 박연폭포다. 개성시내에서 차로 40분 거리의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의 골짜기에 있는데 낙수(낙차 37m)보다는 폭포 위아래의 연못(박연과 고모담)과 정자(범사정), 그리고 숲이 빚어낸 멋진 풍경이 더 볼거리다.

정면보다는 측면이 더 아름답다. 고모담(낙수를 담는 용소) 왼편의 용바위에 올라 물보라를 맞으며 감상하면 더욱 멋지다. 촬영위치로는 오른 편 높은 바위에 지은 정자 범사정이 좋다.

개성에서 황진이(조선 중종 때 기생)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산 지족암에서 10년 정진한 뒤 생불이라 칭송받던 지족선사를 파계시키고 송악산 만월대에서 왕족 벽계수를 노래 한곡(벽계수 낙마곡)으로 나귀에서 내려오게 한 그녀가 개성풍광의 지존 터인 이곳에 그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고모담의 용바위를 보자. ‘飛流直下 三千尺 擬視銀河 落九千’(비류직하 삼천척 의시은하 낙구천)이라는 한시가 흘림체로 전각돼 있다. 폭포의 낙수를 은하수에 비유한 이 시는 황진이가 폭포 물에 머리를 감은 뒤 그 물 묻은 머리카락으로 일필휘지한 시라고 전해진다.

천마산(762m)은 개성의 진산. 이 산을 두른 길이 10km의 대흥산성은 외침에 대비해 축조한 피난성(길이 10km)으로 북문이 폭포 근처에 있다. 북문을 통과해 산길로 850m만 가면 관음사라는 절이 있다. 절로 이어진 폭포 상류의 작은 계곡 길은 울창한 숲과 그늘이 펼치는 호젓한 풍경이 그만이다. 산책하는 걸음으로 다녀와도 한 시간이면 족하다.

○여행정보

시범 관광은 7일 끝났으나 아직 본격 관광 일정이 나오지 않았다. 문의 현대아산 본사 02-3669-3000

개성=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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