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화-脫미국화…‘한국 속의 미국’을 論한다

  • 입력 2005년 9월 7일 03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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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청 앞에서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친미 시위(왼쪽)와 반미 시위는 세계에서 가장 미국화한 나라인 동시에 탈미국화를 부르짖고 있는 한국의 이율배반적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서울 시청 앞에서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친미 시위(왼쪽)와 반미 시위는 세계에서 가장 미국화한 나라인 동시에 탈미국화를 부르짖고 있는 한국의 이율배반적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국은 미국화한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인 동시에 탈(脫)미국화의 욕망이 힘차게 꿈틀거리는 나라다. 미국 뉴욕의 맨해튼을 서울 영등포로 옮겨온다는 TV광고가 나가는 한편에선 6·25전쟁의 영웅 맥아더 장군은 전쟁광이고, 6·25전쟁은 정당한 통일전쟁이라는 글이 발표된다. 한미연합군이 을지포커스렌즈 훈련을 펼치는 동안 남북한 병사가 하나 돼 미국 폭격기를 향해 기관총을 쏘아대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 흥행기록 행진을 펼쳐간다.한미관계의 이런 이율배반적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번 주에는 이런 한미관계의 변화 양상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잇따라 열린다.》

한국아메리카학회(회장 신숙원 서강대 교수)는 창립 40주년을 맞아 10일 서강대 마테오관에서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미국화와 탈미국화’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미국이 한국 문학, 이미지, 담론, 대중문화, 정치, 경제에 끼친 영향과 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한국인의 의식 변화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학술대회다.

김미영(국문학) 숭실대 교수는 ‘한국 근현대 소설에 형상화된 미국 이미지 연구’라는 발표문에서 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소설 속에 나타난 미국의 이미지가 긍정 일변도에서 1965년 남정현의 소설 ‘분지’를 기점으로 수탈자와 침략자의 이미지로 급선회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호오가 분명한 양대 반응의 교차는 한국 소설의 현실 인식력과 대응력이 유연하지 못하며 정치(精緻)하지도 못함을 반영한다”며 “우리 문학이 현실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촉구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비판했다.

김덕호 한기대 교양학부 교수는 ‘한국인의 일상생활과 소비의 미국화’라는 발표문에서 1980년대 한국 사회의 ‘소비혁명’ 이후 젊은이들의 소비행태가 미국보다 더 미국적이라는 점에서 ‘교황보다 더 가톨릭적’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러한 소비문화를 미국화로 볼 것인지, 아니면 소비사회로 진행되면서 세계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봐야할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김연진(사학) 단국대 교수는 ‘한국 언론을 통해 본 미국과 미국화: 이미지와 담론’이란 글에서 언론에 비친 미국은 주한미군의 대폭 철수가 발표된 닉슨독트린(1969년)을 기점으로 ‘우리의 미국’에서 ‘미국의 미국’으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의 수입개방 압력이 강화된 1980년대 말부터 미국을 객관적으로 비판하자는 ‘비미(批美)’, 미국을 이용하자는 ‘용미(用美)’, 미국을 거부하자는 ‘반미(反美)’ 등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1990년대는 미국화 담론이 홍수를 이루면서 ‘예의의 부재, 물질주의의 범람과 소비 향락, 교육 문제, 빈부격차의 심화 등 한국의 모든 문제가 미국적인 것의 유입 및 지배로 인해 발생했다’는 인식에까지 이르게 됐다. 김 교수는 “한국 언론에 나타난 미국은 냉전과 탈냉전의 시대, 독재와 민주정권의 교차 속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이미지”라고 지적했다.

한편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는 9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 명지빌딩 20층 소회의실에서 ‘박정희와 한미관계’를 주제로 정기 콜로키엄을 개최한다.

홍성걸(정치학) 국민대 교수가 ‘박정희의 핵개발과 한미관계’, 홍규덕(정치외교학) 숙명여대 교수가 ‘베트남 파병과 한미 동맹관계의 변화’를 주제로 발표한다.

베트남 파병에도 불구하고 닉슨독트린이 나오고 이것이 박정희 시대 핵개발 시도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탈미국화 움직임의 원인(遠因)으로 이 시기 한미관계에 대한 분석이 주목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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