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크엔드]日기독교 신자 1% 불구 ‘교회결혼식’ 선호

  • 입력 2005년 8월 19일 03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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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쓰미 다카히로(왼쪽)와 미야가와 아쓰코 커플이 서양인 목사를 주례로 초빙해 결혼식을 마친 뒤 활짝 웃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교회 결혼식’이 유행이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아쓰미 다카히로(왼쪽)와 미야가와 아쓰코 커플이 서양인 목사를 주례로 초빙해 결혼식을 마친 뒤 활짝 웃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교회 결혼식’이 유행이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한여름인 7월 30일 오후 6시. 일본 시즈오카 현 하마마쓰의 하마나 호(湖) 인근 예배당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도쿄에서 승용차로 4시간가량 걸리는 이곳은 매년 봄이 되면 일본 최대의 꽃 축제가 열리는 인기 휴양지다.

바다와 호수가 해안선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어 다양한 수상 레저를 즐기기에도 좋다. 일본인 친구가 “호수 경치가 멋있고, 장어 맛도 최고”라고 추천하기에 기자도 여름 휴가를 이곳으로 다녀왔다.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주인공은 신랑 아쓰미 다카히로(26·회사원)와 신부 미야가와 아쓰코(한국명 김돈자·27) 씨. 시즈오카가 고향인 신랑과 도쿄 태생의 재일교포 신부는 “대학시절 친구 소개로 처음 만난 뒤 정확히 2454일 만에 한집에서 살게 됐다”며 기뻐했다.

30분간 진행된 결혼식은 한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부의 부친이 웨딩드레스를 곱게 차려 입은 딸과 함께 입장해 사위에게 인계하는 장면은 한국과 닮았다.

○ 결혼식-피로연-뒷풀이… 비용 2000만원선

하이라이트는 결혼식 이후 인근 레스토랑에서 열린 피로연. 일본 전통의상인 하카마 차림으로 신랑이 등장한 데 이어 신부가 화려한 색상의 한복을 입고 나타나자 장내에선 감탄사가 터졌다. 신랑의 어머니는 일본의 전통 관악기를 연주했다.

60여 명의 하객들이 코스 요리로 식사를 하는 도중 신랑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가 연주한 노래는 일본 내 한류 열풍의 진원지가 된 드라마 ‘겨울연가’ 주제가. 국경을 넘어 사랑의 결실을 이룬 신랑과 신부가 한일 양국의 친선을 다짐하는 이벤트의 하나로 구상했다고 한다.

피로연이 끝난 뒤 신랑과 신부는 오전 1시까지 친구들과 뒤풀이 시간을 보냈다. 한달 뒤인 이달 말에는 결혼식장에 오지 못한 친구들을 초청해 도쿄에서 뒤풀이를 한 차례 다시 연다고 한다. 작은 바를 빌려서 여는데 참석자들은 회비로 8000엔(약 8만 원)씩 낸다.

이날 결혼식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아쓰미-미야가와 씨 커플이 기독교 신자가 아닌데도 서양인 목사를 주례로 초빙하는 등 교회 결혼식 분위기를 자아냈다는 점. 서양인 목사는 인생의 새 출발선에 선 두 젊은이에게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며 백년해로를 당부했다.

이처럼 최근 일본에서는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의 절반 이상이 교회를 식장으로 선택하고 있다. 기독교 신자가 인구의 1%에 불과한데도 ‘결혼식은 교회에서 해야 한다’는 통념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신사에서 전통 예법에 맞춰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도 있지만 교회 결혼식이 대세인 것이다.

한 일본인 여성은 “교회에서 하면 멋있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하고, “종교와 상관없이 평생을 사랑하고 살겠다고 경건하게 다짐하는 의미에서 교회를 선택했다”는 커플도 적지 않다.

대도시는 물론 지방 중소 도시의 호텔들도 교회 결혼식 수요를 감안해 부속 시설로 예쁜 예배당을 꾸며둔다. 아쓰미-미야가와 씨 부부처럼 서양인 목사를 주례로 택하면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도 수요는 늘어나는 추세다.

이날 결혼식 비용은 하객 식사비를 포함해 약 200만 엔(약 2000만 원). 축의금으로 일부를 충당했다.

○ 90년대 중반까진 호화판… 최근 거품 빠져

일본에서 결혼식 축의금은 친소 관계와 대접하는 식사의 수준에 따라 3만 엔, 5만 엔, 10만 엔 등 다양하다. 2만 엔은 ‘커플이 둘로 갈라지기 쉬워서’, 4만 엔은 ‘한자로 죽을 사(死)자가 끼어 있어서’ 잘 내지 않는다. 축의금 액수가 올라갈수록 봉투도 커지고 디자인도 화려해진다.

가장 인기있는 결혼 시즌은 6월. 장마철이어서 날씨가 좋지 않지만 ‘6월의 신부는 행복하다’는 속설이 젊은층 사이에 퍼져 있다. 날씨가 좋은 10월과 11월이 그 다음으로 꼽힌다.

하지만 아쓰미-미야가와 씨 부부처럼 한여름에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도 많다. 특히 지방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7, 8월 여름 휴가철과 겹쳐 하객을 모시기가 쉽다고 한다.

일본이 거품 경제로 흥청대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결혼식은 호화판이었다. 결혼식 유행을 따라가느라 서민층의 등이 휠 지경이라는 비판론도 나왔다.

당시에는 ‘고급호텔 결혼식-해외 신혼여행-값비싼 브랜드 제품 선물’이 당연시됐다. 하와이나 괌 등으로 양가 친척을 초청해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은 미국, 캐나다, 유럽으로 가는 ‘통큰 커플’도 많았다. 샐러리맨의 결혼식 비용이 800만 엔(약 8000만 원)을 넘는 바람에 신혼 때 경제적 부담으로 허덕대는 사례도 많았다.

그러나 경제가 예전같지 않은 요즘에는 이벤트 스타일을 피해 자신들만의 개성이 담긴 결혼식을 선호하는 커플이 늘어나고 있다. 아쓰미-미야가와 씨 커플도 여러 차례 머리를 맞대고 결혼식을 준비했다. 결혼 케이크를 두 사람이 직접 디자인했고, 식사 메뉴와 행사장 인테리어 등도 꼼꼼히 점검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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