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이정재]‘민속아카이브’ 설립 급하다

  • 입력 2005년 7월 26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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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어느 연구자가 한국의 전통문화를 담은 귀중한 음성, 영상자료, 사진들을 일본인에게 수십억 원에 팔아넘긴 일이 있었다. 혹자는 그를 매국노라 질타하였지만 사정을 살펴보면 꼭 그럴 것만도 못 된다. 이는 전통문화 자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뒤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평생을 바쳐 모은 자료를 국내의 기관이나 수집가에게 호소하며 인수해 줄 것을 아무리 종용해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단 한 명의 일본인에게 인정되어 팔려간 것이다. 우리의 짧은 안목을 어찌 한탄하지 않을 수 있으랴. 문제는 이런 일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결국은 전통문화와 문화재 관리의 허점에 까닭이 있다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일컬어 ‘아카이브’라 한다. 우리말로 옮기면 기록물 보존소가 되지만 오늘날의 아카이브는 이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가진다. 이들은 그 자료적 특성 때문에 문화재로 지정받지는 못하지만 그 가치는 문화재 이상의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문화재가 아니다. 민속문화 대중문화의 현장과 민중의 삶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 놓은 자료가 모두 광의의 문화재인 것이다. 김종철 전 민속박물관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아카이브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첫째는 민속자료를 통합 관리하는 자료센터의 부재, 둘째는 개인 소장가의 귀중한 자료의 분산 및 인멸 현상의 심각, 셋째는 유무형의 민속자료, 민속문화재, 사진자료, 영상자료, 녹음자료 등 자료 관리의 주체로서 박물관의 부적합.

유난히 기층적 문화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우리 민속은 형태로 틀 잡히고 유형화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이런 문화일수록 그 아카이브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커진다. 문화 전수자들의 행적과 머릿속에만 있어서 사람이 죽으면 영원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문화관광부나 문화재청 등 어느 기관에서도 다루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문화재에 대한 개념을 혁신하고 확대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이를 해결하는 한 방법이 민속아카이브의 설립이다.

민속아카이브는 이미 해외에서는 개념이 정립되고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 다가오는 문화 세기를 준비하는 첨병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이와 관련된 기관의 설립이 시도되었지만 번번이 좌초되었다. 얼마 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전국민속학자 대회’에서 이 문제를 놓고 열띤 논쟁을 하였고 대안을 모색하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진척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당장 광복 후 1세대 학자들의 방대한 자료의 처리가 대책 없이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하루빨리 관련 기관이나 기구가 설립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은 이들에 대한 정보화 및 전산화의 문제이다. 민속자료의 전산화와 정보화는 현재 일부 국가기관에서 부분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아카이브라 보기에는 체계를 갖추지 않은 상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작업은 가능하면 많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체계가 없는 투자는 중복과 졸속을 양산한다. 하루속히 아카이브를 두어 이 모든 것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이 문화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지식정보화 시대를 향한 순수한 문화 콘텐츠 개발 및 지원 체제의 구축이 필수다. 신부가가치 창출의 근원은 문화 콘텐츠와 그의 활용에 있기 때문이다. 문화 콘텐츠와 정보화로 무장한 신개념의 민속아카이브는 미래 문화 강국의 면모를 갖추는 데 필수적인 부분이다.

이정재 경희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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