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차 세계여성학대회]“미래의 새판짜기 중심에 女性이”

  • 입력 2005년 6월 2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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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첫 대회 지휘 장필화 조직위원장
아시아 첫 대회 지휘 장필화 조직위원장
“판은 벌어졌습니다. 이번 주를 위해 꼬박 3년을 준비했습니다. 잔치가 그렇잖아요. 요리다 테이블세팅이다 힘들게 준비했는데 몇 시간 안에 음식은 다 없어져버리고….”

20∼24일 이화여대 연세대 서강대에서 열리는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장필화(54) 조직위원장. 장 위원장은 ‘잔치론’을 들먹이며 벌써 잔치 뒤의 허탈함까지 걱정하고 있었다.

“음식 맛이 어떠했다 하는 칭찬과 불평이 나오고 엄청난 설거지거리가 남을 겁니다. 그러나 즐거웠던 기억과 자양분을 얻고 갈 것이기에 잔치를 준비한 것이고 이러한 잔치는 계속되겠죠.”

세계여성학대회는 1981년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이후 3년마다 열리며 아시아에선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1975년 ‘세계 여성의 해’ 30년,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10년 결산을 겸하는 뜻 깊은 행사다.

장 위원장은 “여성억압의 역사가 깊었던 만큼 여성학이 발달한 데 따른 영광 아닌 영광”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학술대회라는 이름으로 3000여 명이라는 인원이 참석하는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80여 개국의 페미니스트가 참석하며 2000여 명이 발제한다.

대회 전체의 주제는 ‘경계를 넘어서-동서, 남북’. 세계여성들이 동서문명 간 갈등과 남북 간 빈부격차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논의한다.

이 부분에서 장 위원장은 페미니즘을 ‘한물 간’ 유행으로 보는 일부의 시각을 의식한 듯 설명을 덧붙였다.

“페미니스트들을 ‘잘난 여자’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잘난 여자’나 ‘그 다음에 오는 여자’나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에서 겪는 경험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그러나 페미니스트의 경우 훨씬 복잡하다”고 부연했다.

“페미니즘을 사회적으로 확산시켰지만 ‘잘난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만들어버렸어요. 페미니즘이 선정성과 더불어 상품화됐기 때문이죠. 그러나 여성주의는 우리 사회 전체의 비전이자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여성주의 리더십’에 대한 장 위원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한마디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입니다. 현재 질서에 편입해 출세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끼어들기도 필요하지만 새판을 짜기 위한 리더십이 더욱 필요하지요. 가부장제 질서는 더 이상 새로운 세상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 위원장의 설명이 계속됐다.

“저의 은사께서는 ‘이화여대도 남녀공학을 해야한다’는 지적에 ‘국회에서 여성이 절반을 차지하면 생각해 보자’고 말씀하시더군요. 국회는 여성이 끼어들어야 하는 대표적인 영역이잖아요.”

그러나 이제 여성들이 진출하고 있는 조직에서 조금씩 문화가 바뀌고 있다. 완벽한 새판짜기는 아니더라도 여성리더들이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고 있다.

장 위원장은 이 같은 분위기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가 한국여성학과 여성운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0명의 세계여성이 한국에 옵니다. 그 무대에 서면 세계무대에 서는 것입니다. 한국여성들이 그 무대에 섭니다. 그리고 그들과 교류하고 친구가 될 겁니다.”

이 행사가 한국여성학과 여성운동이 세계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잘난 사람들만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누구나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다른 나라와 연대해야 합니다. 이러한 의식을 갖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조직위원회 사람들은 이 대회에서 논문 한편 발표할 수가 없다. 참가자들을 뒷바라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3년 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연구성과를 내놓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장 위원장은 “3년간 준비하면서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며 “그러나 이제 욕심은 버리고 이 대회가 세계에 한국여성을 알리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한국 첫인상 우리가 책임져요”▼

“행사 및 전시 안내부터 통역까지 모두 맡기세요.” 세계여성학대회 대회장인 이화여대 교정에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전영한 기자

“세계여성학대회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상대가 자원봉사자들이잖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대회 전체의 이미지를 책임질 겁니다.”

국제대회에 자원봉사자가 빠질 수 없다. 특히 자원활동이 ‘봉사’의 의미를 넘어 자기 자신과 남을 알아가는 경험이라고 한다면 ‘경계를 넘어서’라는 이 행사의 주제는 이들에게 더욱 호소력을 갖는다.

이들이 이 기회를 그냥 얻은 것은 아니다. 2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자원’이다.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중국어 등 외국어 가능자와 국제행사 관련 자원봉사 경험자를 대상으로 250명을 모집했는데 지원자가 500명 가까이 몰렸다.

서울 강남구여성센터의 학습동아리 ‘보람을 찾는 영어사절단’ 주부 6명은 지난해 서울 세계여성지도자회의에 이어 올해에도 봉사에 나섰다. 이들은 이번 행사를 앞두고 매주 모여 2시간씩 영어실력을 닦았다.

이두희(55·서울 강남구 일원동) 씨는 영어학원과 동네복지관에서 영어를 배우다 통역자원봉사에 나선 경우. 그는 “대학 졸업 후 영어와는 담을 쌓고 살다가 나이가 들면서 영어를 배웠다”며 “내 실력으로 봉사를 할 수 있다니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손명희(54·서울 강남구 청담동) 씨는 남편의 유학시절 미국에서 영어를 익혔고 5년 전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해 통역봉사를 하고 있다.

주부들뿐 아니다. 여성학자 손승영 동덕여대 교수의 딸 신솔이(이화여대 사회학과 4년) 씨는 행사 안내를 맡았다. 그는 “여성학은 저의 관심 분야고 세계적 학자들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라며 기꺼이 참여했다.

이화여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 옥복연(43·미국 남코네티컷대 석사과정) 씨와 아들 허인혁(18·미국 트리니티파울링고교 2년) 군 모자도 자원봉사에 나섰다.

허 군은 “여자들이 무슨 얘길 하나 궁금해서 들어왔다”고 웃었다.

허 군 외에 남학생 30여 명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장필화 조직위원장의 딸 하나 미셀(21) 씨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재원. 엄마를 돕기 위해 영국에서 날아와 행사기간 중 영문레터 발간을 맡았다.

:장필화 조직위원장 약력:

1974년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1974∼1980년 크리스챤아카데미 여성사회 간사

1984년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교수(국내 최초의 여성학과 교수)

1988년 영국 서섹스대 여성과발전학 박사

1992∼1993년 이화여대 여성연구소장

1995∼2002년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소장

2000년 한국여성학회 회장

2002년∼ 이화여대 대학원장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세계여성학대회 일정▼

20일 오전 9시∼10시 반=개회식(이화여대 대강당), 오전 10시 반∼낮 12시=기조연설-거트루드 몽겔라(범아프리카의회 의장), 오후 1∼6시=분과회의(이화여대 각 강의실)

21∼24일 오전 8시 반∼10시 반=전체회의(이화여대 대강당)

21∼23일 오전 10시 반∼낮 12시=분과회의, 오후 1∼6시=분과회의

23일 오후 7시=폐막제(이화여대)

24일 오전 10시 반∼낮 12시=폐막식(이화여대 대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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