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씨, 14일 타계한 지휘계의 거장 줄리니를 추모하며

  • 입력 2005년 6월 20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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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91세로 타계한 세계 지휘계의 거장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사진). 그는 1978년 당시 25세였던 정명훈 씨를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발탁해 정 씨가 오늘날 세계 정상급 지휘자로 입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현재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정 씨가 전화로 타계한 ‘은사’에 대해 알려온 추모의 뜻을 요약, 정리했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열여덟 살 때, 런던에서였다. 베토벤 교향곡 7번 연주였는데 작품의 핵심을 짚어내는 강렬한 연주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피아노 선생인 마리아 쿠르초의 소개로 그를 무대 뒤에서 만났다. 그때만 해도 그가 내 인생 깊숙이 들어올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피아노부문에서 2위에 입상한 뒤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지휘를 공부하면서부터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에 사로잡혔다. 마침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부지휘자를 뽑는다는 말을 듣고 오디션에 응했다. 상임지휘자였던 줄리니는 25세에 불과했던 나를 뽑아주었다.

그의 곁을 지키면서 무엇을 배웠던가? 줄리니는 음악에 대해 중언부언 설명하지 않았다. 단원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직접 음악의 핵심에 다가가는 그의 지휘에는 말로 배울 수 없는 수많은 가르침이 있었다.

그가 내 지휘에 대해 처음 언급한 것은 함께 일한 지 1년이나 지나서였다. 베토벤 ‘레오노레 3번’ 서곡을 연주한 후 무대 뒤로 들어가자 그는 내 등을 두드리며 “당신은 지휘자야(You are Conductor)”라고 한 마디 했다. 지휘와 피아노 사이에서 그때까지 방향을 정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것일까. 방황하던 내 마음이 지휘의 길로 정해진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1985년, 가슴 아픈 그날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의 부인이 쓰러져 병상에 눕게 된 것이었다. 그는 단원들 앞에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아내가 나를 돌봐주었소. 이제 내가 아내를 돌봐줄 차례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단원들은 상기된 얼굴로 “당신만을 따랐던 우리를 이렇게 떠나는 겁니까?”라고 항의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뒤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 외곽의 아파트에서 부인 간병에만 열중했다. 밀라노에서 연주가 있을 때마다 그를 찾았지만, 하루하루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슴 아팠다. 그의 부음을 듣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듯 했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이제 먼저 보낸 아내를 만나러 가는 구나….

이 전화를 받는 중에도 다른 전화기의 신호음이 빗발친다. 아마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추모 연주를 열자고 의논하려는 것일 게다. 이제 전화를 끊어야겠다. 고인이 다른 세상에서 행복하기를 빈다.

정리=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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