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영화 ‘배트맨 비긴즈’ 24일 개봉

  • 입력 2005년 6월 16일 03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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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돈이 많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보다 많을지 모른다. 당신은 격투기에 능하다. 이종(異種)격투기 최고수인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는 쉽게 제압할 수 있다. 당신은 과학기술의 총아다. 과학적 발견을 응용한 첨단 보호 장비와 무기로 온몸을 감쌌다. 그리고 당신은 정의감에 불탄다. 부모님을 살해한 범인에 대한 복수심은 이미 가라앉혔다. 다만 범죄와 부패에 대한 응징만은 자신의 몫으로 여긴다.

당신은 바로 ‘배트맨’이다.

시리즈의 다섯 번째 편 ‘배트맨 비긴즈’의 메가폰을 잡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배트맨이 인간이라는 점을 새삼 강조한다. 안개가 음산하게 드리운 거대도시 고담에서 하늘에 박쥐모양 조명이 비추면 홀연히 나타나는, 인간이지만 요괴처럼 보이는 초(超)영웅 이야기는 ‘이제 그만’이다. 놀란 감독은 ‘배트맨 포에버’(1995년)와 ‘배트맨과 로빈’(1997년)의 실패로 처참하게 망가진 배트맨을 살리는 길을 ‘왜 한 인간이 배트맨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에서부터 찾고자 한다.

○ 성장과정 등 1편 이전으로 돌아가

어린 나이에 부모가 살해되는 것을 지켜본 재벌 2세 브루스 웨인(크리스천 베일)은 분노와 복수심, 죄책감에 시달리며 범죄의 세계를 헤맨다. 부탄의 교도소에서 헨리 듀커드(리암 니슨)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을 만난 웨인은 그의 가르침에 따라 히말라야 산중에 있는 범죄 처단 비밀집단에서 수행한다. 이 집단은 악의 소굴이 된 고담 시 전체를 파괴하려 하지만 이에 반발한 웨인은 홀로 고담 시로 돌아온다. 그리고 범죄와 부패를 처단하는 배트맨으로 거듭난다.

그러나 웨인의 인간적 고뇌를 담은 전반부가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누가 뭐래도 이 영화는 제작비만 1300억 원이 들어간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다. 웨인이 배트맨으로 변신하는 과정과 악당에 맞서 싸우는 격투신이 주를 이루는 후반부는 올해 나온 어떤 오락영화들보다 신나고 파괴력이 있으며 숨 가쁠 정도로 빠르게 전개된다.

다만 ‘인간’ 배트맨을 보여 주려다 보니 ‘어두운 영웅’ 이미지는 퇴색했다. 웬만한 강폭은 훌쩍 뛰어넘어 부교를 놓을 수 있도록 줄을 연결하는 배트모빌 ‘텀블러’, ‘기억재생 섬유’로 된 망토, 직격탄이 아니면 총알도 뚫지 못하는 3억 원짜리 케블라 옷감, 165kg의 무게를 지탱하는 특제 철사 등은 알고 보니 웨인의 회사에서 제작한 신상품이다. 박쥐 모양 메탈 표창에 스프레이를 뿌려 검은색을 입히는 웨인의 모습에서 ‘배트맨 신화 깨기’는 절정에 이른다.

‘배트맨 비긴즈’에는 사회에서 소외된 슬픈 과거가 있는 악당이자, 배트맨의 어두운 내면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존재였던 ‘조커’(배트맨·1989년)나 ‘펭귄’(배트맨 리턴즈·1992년)이 없다. 배트맨의 가면을 쓴 웨인은 정의와 분노, 복수와 공포 사이의 고민은 싹 잊은 듯 정의 바로 세우기와 악당 처단에만 몰두한다. 그 결과 ‘배트맨 비긴즈’의 배트맨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 어느새 그토록 벗어나고자 애썼던 슈퍼 히어로가 되고 말았다.

○ 리암니슨 등 주역들 모두 영국인

놀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것을 비롯해 크리스천 베일, 리암 니슨, 충실한 집사 알프레드로 나온 마이클 케인까지 주연과 조연이 모두 영국인이다. 이들이 혼수상태에 빠졌던 미국의 캐릭터 배트맨 시리즈를 살려냈다. 2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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