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국내 최장기 공연 연극 ‘용띠 위에 개띠’ 이도경씨

  • 입력 2005년 6월 8일 0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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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만 해서도 돈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배우 이도경 씨. 연극 ‘용띠 위에 개띠’에 9년째 출연 중이다. 신원건 기자
“연극만 해서도 돈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배우 이도경 씨. 연극 ‘용띠 위에 개띠’에 9년째 출연 중이다. 신원건 기자
국내 최장기 공연 연극인 ‘용띠 위에 개띠’(이하 ‘용띠개띠’)가 최근 조용히 ‘개막 8주년’을 넘겼다. 1997년 5월 26일 초연된 이 연극은 공연 횟수만 해도 2248회(6월 6일 기준), 그동안 다녀간 관객은 25만 명을 넘어섰다. 몇 년째 최장기, 최다 공연 기록을 스스로 경신하고 있는 셈.

꼼꼼하고 빈틈없는 노총각 만화가와 덜렁대는 노처녀 여기자가 결혼해 아옹다옹 사는 모습을 통해 부부의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용띠 남자’와 ‘개띠 여자’ 단 두 명뿐.

이도경(52) 씨는 초연부터 지금까지 ‘용띠 남자’ 역을 맡아온 ‘국내 최장기 공연 배우’이자 이 연극의 연출자 겸 제작자다. ‘용띠 개띠’가 공연 중인 대학로 이랑씨어터(02-766-1717)에서 그를 만났다.

○ 공연하느라 부모님 임종도 못 지켰죠

1953년생 뱀띠인 그는 만 8년을 꼬박 ‘용띠 남자’로 살았다. 작품 속 ‘용띠’는 1988년도, 1976년도, 심지어 1964년 용띠도 아닌 ‘1952년 용띠’다. ‘개띠’ 역시 ‘1958년 개띠’. 8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와 ‘용띠 남자’는 모두 오십줄에 들어섰다. 소감을 묻자 그는 “오래 하다 보니 공연이 일상이 되어버려 덤덤하다”고 했다.

그가 공연을 못한 건 단 네 차례. 과로로 쓰러졌을 때, 정전으로 조명을 쓰지 못했을 때, 시위로 인한 교통 통제로 지각했을 때, 그리고 2002년 월드컵 4강전 때 ‘대∼한민국’을 외치는 함성 탓에 공연을 취소했을 때뿐이다. 공연을 하느라 그는 부모님 임종도 못 지켰다. 여동생 장례식 때도 무대에서 관객을 웃겼다.

○ ‘내 집’ 마련해준 ‘용띠 개띠’

한때 월 20만 원 수입으로 단칸방에서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했던 그였지만 요즘은 공연 없는 날엔 필드에 나가 골프를 친다.

“돈이, 그렇게 편합디다.”

억센 경상도 억양으로 내뱉은 짧은 한마디 속엔 오히려 그동안 돈 때문에 겪었음직한 ‘불편함’에 대한 설움이 묻어났다. 서울예전(현 서울예대)을 졸업하고 연극판에 뛰어든 그는 나이 마흔에 흥행 연극 ‘불 좀 꺼주세요’에 출연하면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를 3년 7개월 동안 공연해 ‘최장기 공연 배우’가 됐던 그는 ‘용띠 개띠’로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깼다. ‘불 좀 꺼주세요’로 무명에서 벗어났다면, ‘용띠 개띠’로 그는 가난에서 벗어났다.

이 작품 덕에 40평대 아파트도 마련했고, 200석 규모의 소극장 ‘이랑씨어터’도 장만했다. 그는 “월 매출이 2500만 원만 돼도 손해는 안 보는데 불경기인 요즘도 손해는 안 본다”고 했다.

○ 영화출연 제의 쏟아졌지만…

그의 극장 ‘이랑씨어터’의 뜻을 묻자 “만희랑 도경이랑”이라고 했다. ‘만희’는 극작가 이만희 씨.

“제가 13년 동안 연극 두 편, 영화 한 편해서 딱 세 작품을 했는데 모두 이 작가가 쓴 작품이에요. 저를 가장 잘 아는 작가죠.”

연극은 ‘불 좀 꺼주세요’와 ‘용띠 개띠’고 영화는 ‘와일드카드’(2003년)다. 첫 영화였던 ‘와일드카드’에서 그는 안마시술소 사장 역을 맡아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후 1500만 원이었던 개런티는 대여섯 배가량 껑충 뛰며 영화 제의가 쏟아졌지만 거절했다.

“‘와일드카드’와 똑같은 역만 요구해서”였다. “이 나이까지 버텼는데 이제 와서 아무거나 쉽게 ‘훌라당’ 맡을 수는 없지 않으냐”는 것.

“‘용띠 개띠’는 10년을 채우고 후배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그는 요즘 이만희 씨와 2년 뒤 개막을 목표로 작품을 구상 중이다.

장기 공연 비결에 대해 그는 “쉬운 얘기로 감동을 주기 때문”이라며 “요즘은 관객도 모르고, 배우도 모르는 관념적인 연극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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