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사라진 비문을 찾아서’…변조된 광개토대왕 비문

  • 입력 2005년 5월 28일 07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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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비문을 찾아서/김병기 지음/290쪽·1만2000원·학고재

중국 지린(吉林) 성 지안(集安) 지방에 있는 고구려 광대토대왕비. 414년 고구려 장수왕이 부왕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광개토대왕비에 대해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일제의 비문 조작’이다. 문제의 조작 내용은 신묘년(辛卯年) 대목.

‘百殘新羅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來渡海破百殘○○新羅, 以爲臣民(백잔신라구시속민 유래조공 이왜이신묘년 내도해파백잔○○신라 이위신민)’. 이를 풀어 보면 ‘백제(백잔)와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으로 줄곧 조공해 왔다. 그런데 일본(왜)이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와 ○○와 신라를 격파해 (일본의) 신민으로 삼았다’는 내용이 된다.

그러나 한일 고대사 어디에도 일본이 한국을 신민으로 삼았다는 내용은 없다. 따라서 이 비를 처음 발견한 일제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바꾸기 위해 비문의 글자를 조작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일본이 바다를 건너와 한반도로 들어왔다’는 내용에 해당하는 ‘渡海破(도해파)’ 글자의 변조 가능성이 특히 높다고 본다.

하지만 일제가 비문을 조작했다는 것에 대해서 심증은 가지만 아직 물증이 명쾌하게 남아있지 않은 상황. 판독이 어려울 정도로 표면이 훼손되어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비문 글씨체의 비교 검토를 통해 일제의 광개토대왕비 변조 가능성을 추적했다. 광개토대왕비의 글씨체에 주목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이자 서예가인 저자는 ‘渡海破’의 글씨체가 비에 나오는 또 다른 ‘渡’, ‘海’, ‘破’의 글씨체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다. 하나하나 비교하면서 변조 사실을 확인해가는 과정이 필적 감정처럼 흥미롭다.

광개토대왕비의 글씨체는 기본적으로 정사각형꼴의 예서체. 그러나 문제의 세 글자는 획의 선과 위치, 글자의 기울기 등에서 차이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 글자는 원래 무슨 자였을까. 저자는 ‘渡海破’의 세 글자를 비문의 다른 글자들과 중첩시켜 비교한 결과 원래 ‘入貢于(입공우)’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럴 경우, ‘∼에 들어와 ∼에게 조공했다’는 뜻이 된다. 이에 맞춰 다시 해석하면 ‘백제와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으로 줄곧 조공해 왔다. 그런데 일본이 신묘년에 백제와 ○○와 신라에 조공을 들이기 시작했으므로 고구려는 일본도 (고구려의) 신민으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저자의 주장을 정설로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답보상태에 머물러 온 광개토대왕비 연구에 하나의 자극과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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