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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4월 25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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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의 디저트용 음료수 ‘과일하나’ 시판을 코앞에 두고 담당 브랜드 매니저(BM) 문은영 (29·여) 대리가 사라지자 회사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문 대리가 있었던 곳은 경남 양산시 웅상읍 CJ 생산 공장.
“봉지 모양의 용기가 압력테스트 도중 갑자기 터지는 바람에 황급히 현장에 내려가 3일을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집에서도 실종된 거 아니냐며 난리가 났었죠.”
문 대리와 같은 식품 BM은 자신의 아이디어로 세상에 태어난 제품을 자식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간다. CJ에서는 이들을 ‘BM’, 풀무원에서는 ‘프로덕트 매니저(PM)’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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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내기=CJ 신선제품사업부에서 근무하는 문 대리는 3명의 디저트 전담 BM 중 한 명. 그녀는 신제품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화장품 시장을 주목한다.
유행에 민감한 화장품의 신제품 개발 추이를 주시하면 소비자의 미래 선호도를 점칠 수 있다는 것.
문 대리는 “2003년부터 식물성 재료를 쓰는 화장품이 쏟아져 나왔다”며 “식품도 신선한 재료를 쓰거나 기능성이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품이 작년 9월 선보인 ‘과일 하나’. 다이어트에 관심 있는 2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저칼로리 디저트다. 과일 하나의 영양소가 통째로 들어갔다고 해서 이름도 ‘과일 하나’로 직접 지었다.
또 다른 디저트 식품 ‘쁘띠챌 치즈케이크’에도 문 대리의 ‘자식 사랑’이 녹아 있다. 새로운 맛을 내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은 케이크를 입에 댔다. 체중이 늘어나도 어쩔 수 없다며 웃는다.
풀무원 두부사업부 김세라(28·여) 대리는 입사 후 체중이 5kg 정도 빠졌다.
김 대리는 “식사도 거르고 두부만 입에 달고 지내다 보니 살이 빠졌다”며 “주부 편에 서서 생각하다 보니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아줌마’ 다 됐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털어놨다.
CJ의 인기상품 햇반 담당 김형일(33) 과장은 가장 먹음직한 상태의 쌀밥을 찾아보겠다며 앉은자리에서 공기밥 다섯 개를 연거푸 먹기도 했다.
▽제품이 나오기까지=‘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반드시 제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물건이 된다’고 판단하더라도 소비자 평가단이 다른 의견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CJ 김 과장은 간식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밥’이라는 제품 아이디어를 냈다. 밥에 딸기와 같은 과즙을 넣으면 건강에도 좋고 아이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
그러나 쌀밥에 뭔가를 넣는다는 발상이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했다. 게다가 딸기가 들어간 ‘빨간색’의 밥이 어색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그는 “소비자 평가단이 좋은 점수를 주지 않으면 아이디어는 자동 폐기된다”며 “아쉽지만 소비자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품 맛이 소비자 평가단으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았다고 해도 용기 디자인, 제품 이름, 영업사원 교육 등의 난제가 남아 있다.
풀무원의 유기농 어린 채소 ‘싹틴’을 내놓은 선경래(29·여) 대리는 “처음 3개월 동안 시범판매할 때 제품 설명을 어떻게 해야 소비자들이 사가는지, 어떤 위치에 진열하는 것이 좋은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생으로 먹는 ‘비단 두부’를 내놓은 풀무원 김 대리는 시판 이후에도 좀더 맛있는 소스를 개발하기 위해 지금도 식품연구원과 매일 5, 6가지 맛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자식 사랑’ 어디 가나=6개월 동안 이어지는 신제품 개발 과정을 총괄하는 PM과 BM은 때로는 부담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한다.
풀무원 선 대리는 ‘싹틴’ 시판 전날 밤 소비자들이 야채가 썩었다며 환불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한 고객이 할인점에서 ‘싹틴’을 손에 들고 한참을 살펴본 뒤 다시 내려놓을 땐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가끔 ‘맛있다’고 전화하는 소비자들이 있어 일할 맛이 난다고.
CJ 김 과장은 “18개월 된 아들이 흑미 햇반을 맛있게 먹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웃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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