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상대방에 대한 우정이 무관심보다 위험할때…

  • 입력 2005년 3월 25일 16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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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과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일본어 소설 두 편이 나란히 번역돼 나왔다. ‘곰의 포석’은 일본인 작가가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옛 친구와 만나 보낸 며칠간의 이야기를 그렸고, ‘처음 온 손님’은 일본에 유학 온 스위스 작가가 일본 소녀와 나눈 사랑이야기를 일본어로 쓴 작품이다. 각각 일본의 대표적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과 스바루문학상 수상작이다.》

◇곰의 포석/호리에 도시유키 지음·신은주 홍순애 옮김/151쪽·8000원·문학동네

‘곰의 포석’은 우리에게 소개된 일본문학 중에서는 흔치 않은 지적인 에세이 풍의 소설이다. 이 소설의 제목은 라퐁텐의 우화에서 따온 소재다. 곰이 노인의 코끝에 앉은 파리를 쫓으려고 던진 포석(鋪石·도로포장에 사용하는 사암이나 단단한 돌덩어리)이 노인의 머리까지 깨버렸다는 이야기. 쓸데없는 호의나 간섭을 뜻하는 말이 되어 버린 곰의 포석은 소설에서 주인공이 유대인 친구와의 우정을 성찰하게 하는 장치가 된다.

번역 일을 하는 주인공은 프랑스에 머무는 동안 옛 친구인 얀을 만나 시골마을에서 며칠을 보낸다. 얀은 스킨헤드에다 양 귓불에 피어스를 단 유대인. 친구라지만 둘 사이는 ‘왠지 모르게 접촉하는 부분은 있어도, 거기서 더 나아가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관계이다.

우정과 이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의 내면의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건드려 버리는 친구란, 무관심하고 냉담한 타인보다 오히려 더 위험한 존재가 아닐까라는 물음이다.

◇처음 온 손님/데이비드 조페티 지음·유숙자 옮김/222쪽·9500원·문학과지성사

‘처음 온 손님’은 스위스인 유학생이 시각장애를 지닌 일본 소녀 교코와 나누는 강렬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 스위스에서 태어나 고교시절부터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한 작가는 일본 도시샤(同志社)대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한 뒤 일본어로 소설 시 논픽션 작품을 쓰는 이른바 ‘월경(越境) 작가’이다.

일본의 유서 깊은 도시 교토에 유학 온 주인공은 앞을 보지 못하는 교코에게 소설을 읽어 주는 대면낭독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는다. 두 사람은 함께 책을 읽을 뿐 아니라 교코가 평소 가 볼 수 없었던 가라오케 레스토랑 등을 함께 다니면서 정을 쌓아 연인과 다름없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주인공은 졸업논문 심사장에서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교수들의 모습에서 크게 실망하고 일본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교코는 도쿄에서 직장을 얻어 떠나기로 하면서 두 사람은 이별을 맞는다.

이별의 순간 교코는 눈물과 함께 작은 미소로 말한다. “가끔 세상 어딘가에서 편지 줘요. 그렇지만, 회사 동료 여직원이나 누구한테 그걸 읽어 달라고 해야 할 테니, 너무 자극적인 내용은 쓰지 마세요.”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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