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뮤지컬 코리아! 신화가 시작된다

  • 입력 2005년 2월 17일 15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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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출연 배우들이 음악에 맞춰 화려한 춤을 선보이고 있다. 다소 멀게 느껴지던 뮤지컬은 최근 몇년 사이 빠르게 팬들을 사로잡는 문화 장르로 자리잡았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출연 배우들이 음악에 맞춰 화려한 춤을 선보이고 있다. 다소 멀게 느껴지던 뮤지컬은 최근 몇년 사이 빠르게 팬들을 사로잡는 문화 장르로 자리잡았다.
뮤지컬!

그 바람이 뜨겁게 불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공연사업팀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회사가 투자한 ‘지킬 앤 하이드’의 티켓을 구해달라는 ‘압력성’ 청탁으로 진땀을 흘려야 했다. 영화배우 조승우가 주역으로 출연하는 날에 특히 청탁이 몰렸지만 이미 매진 상태였다. 그의 뛰어난 연기와 카리스마, 스타 마케팅의 힘 덕분에 객석의 80% 이상이 유료 관객으로 찼고 젊은층 사이에 ‘조승우 마니아’를 낳기도 했다. 14일 막을 내린 이 작품은 약 3개월 동안 모두 9만 여명이 관람했다.

지난해에는 40, 50대 중년층에도 바람이 불어 닥쳤다. ‘댄싱 퀸’ ‘아이 해브 어 드림’ 등 1970년대 인기그룹 ‘아바’의 노래를 뮤지컬로 만든 ‘맘마미아’는 중년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지난해 공연계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됐다. 전체 20만 명(매출 143억 원)의 관객 가운데 40대 이상이 절반을 넘었다.

뮤지컬 관람객 수는 2001년 37만 명에서 2004년 70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왜 뮤지컬인가?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영화에 이어 새로운 문화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뮤지컬, 그 현상을 짚어본다.

○ 떠오르는 문화산업

영하 7, 8도의 쌀쌀한 날씨였던 11일 서울 정동 팝콘하우스의 열기도 만만치 않았다.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보기 위해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메운 것. 이 작품은 뮤지컬 스타를 꿈꾸는 시골 처녀 페기의 화려한 변신과 흥행에 목숨을 건 미국 브로드웨이 쇼 비즈니스 세계를 담았다. 한국 정서에 그다지 어울리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화려한 조명 아래 배우들의 탭댄스, 노래가 이어지자 박수 소리가 터졌다.

라이선스 대형 뮤지컬에 관객이 몰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여전하기는 하지만 뮤지컬 열기는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올해만 해도 ‘핑클’의 옥주현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초대형 뮤지컬 ‘아이다’가 국내 초연을 앞두고 있는 데다 창작 뮤지컬의 대명사인 ‘명성황후’는 10주년 기념 공연을 하고 있다. 또 보기 드문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브로드웨이 캐스팅으로 다시 공연되는 ‘오페라의 유령’ 등 대작들이 기다리고 있다. 제작비만 100억 원을 웃도는 작품도 적지 않아 영화의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연상시킨다.

뮤지컬 전용극장이 아직 생기지 않았지만 일부 공연장에서는 장기공연도 시도되고 있다. ‘오디 뮤지컬 컴퍼니’는 다음 달부터 1년 동안 서울 동숭동 동숭아트센터에서 연중 시리즈로 ‘뮤지컬 열전’을 개최한다. 팝콘하우스에서 공연 중인 ‘브로드웨이 42번가’는 객석 점유율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무기한으로 공연하는 ‘오픈 런(Open Run)’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 뮤지컬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7,8 년 전. 1997년 ‘명성황후’가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뮤지컬에 관심이 쏠리게 됐고, 2001년 공연된 ‘오페라의 유령’이 192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7개월의 장기공연을 펼쳤다. 지난해에는 ‘난타’ 전용관이 미국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 개관하는 등 뮤지컬사(史)를 다시 쓸 만한 사건들이 잇따라 일어났다.

대학에서는 2000년대 들어 뮤지컬학과가 생기기 시작했다. 또 다음 달에는 국내 뮤지컬 1세대 스타인 남경읍-경주 형제가 뮤지컬 배우 양성과 일반인을 위한 ‘남 뮤지컬 아카데미’를 개관한다.

○20대 후반 중심 소비층 넓어져

국내 뮤지컬 티켓 가격은 대략 5만∼12만 원. 가격만으로는 브로드웨이나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선진국과의 경제력을 비교하면 꽤 부담스럽다. 그런데도 뮤지컬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날 ‘브로드웨이 42번가’ 공연 휴식 시간에 만난 관객 이인희 씨(24·대학생)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현장성이야말로 영화 등 다른 문화상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뮤지컬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과거 영화배우나 탤런트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팬클럽은 이제 주역급 배우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 됐다. 조승우 외에도 ‘남바다’(남경주) ‘쿨’(이건명) ‘주전자’(주원성 전수경) 등 뮤지컬 스타 팬클럽의 활동이 활발하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뮤지컬 동호인 모임 ‘웰컴 투 브로드웨이’ 운영자 조수진 씨(24·대학생)도 “2만여 명의 회원 가운데 경제력이 있고 문화적 욕구가 강한 20대 중후반의 직장 여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이유리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뮤지컬 전공)는 “1970, 80년대 문화생활의 코드가 문학과 연극이었다면 2000년대에는 영화와 뮤지컬”이라며 “특히 영화가 저렴하고 일상적인 문화 생활인 반면 뮤지컬은 비교적 질이 높은 고급 문화 소비의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영화보다는 예술적이고, 무용이나 오페라보다는 대중적이라는 것이 뮤지컬에 대한 인식이다.

○ 국민소득 1만달러 넘으면서 기지개

전문가들은 뮤지컬이 국민소득 1만 달러대를 넘어서면 꽃피는 문화 장르라고 한다. 고액의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소득 수준에 도달해야 하고, 라이브 공연을 뒷받침할 만큼 대도시의 문화 소비층이 탄탄해야 하기 때문. 그래서 뮤지컬은 미국 영국 호주 독일 네덜란드 캐나다 등 선진국의 대도시에서 활성화돼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싱가포르 홍콩과 최근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을 중심으로 공연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 국내의 전체 공연 시장 규모는 1700억 원, 이 중 뮤지컬은 800억 원으로 추산된다. 매년 15%대의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

‘오페라의 유령’의 국내 공연 제작사 ‘설 앤 컴퍼니’의 설도윤 대표는 “최근 뮤지컬 팬이 크게 늘어나고 대기업 관련 제작사들이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등 시장 분위기를 감안할 때 내년에는 시장 규모가 1000억 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제작사의 반대로 무산됐지만 한해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기록하고 있는 일본 극단 ‘시키(四季)’가 지난해 한국 진출을 시도했던 것도 이러한 국내 시장의 성장 가능성 때문이다.

2005년 뮤지컬은 우리 문화 산업의 또 다른 화두다. 한국 영화의 뒤를 잇는 문화 첨병이 될지, 아니면 어슬렁거리는 유령이 될지.

글=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사진=강병기 기자 arch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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