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유홍준, ‘광화문 현판 교체’ 40년 친구 편지 공방

  • 입력 2005년 1월 27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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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규명을 둘러싼 논란이 오랜 친구 간의 편지 공방까지 낳았다. 한나라당 김형오(金炯旿) 의원이 27일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쓴 광화문 현판을 정조(正祖)의 글씨로 교체키로 한 유홍준(兪弘濬) 문화재청장에게 공개 항의 편지를 보냈다. 이에 유 청장은 이날 오후 공개 답장을 보내 김 의원의 지적을 반박했다. 둘은 서울대 동기다.》

▼김형오 의원 “승자에 의한 역사파괴 막아야”▼

김 의원은 이날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편지에서 “광화문 현판을 갑작스럽게 바꿔치기하려는 의도에 대해 모두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승자에 의한 역사 파괴는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또 “광화문 현판을 정조의 글씨를 집자해서 ‘가짜 현판’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반역사적 발상이 아닌지 두렵다”고 지적했다. 교체 배경을 둘러싼 항간의 의혹과 관련해서는 “유 청장이 최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정조로 비유했다는 것과 (현판 교체가) 무관치 않다는 일부의 주장에 동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1993년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중앙청 철거 추진 일화를 소개하며 “군정 종식을 외쳤던 김 대통령도 대한민국 중심대로의 현판은 살려두었는데, 유 청장이 광화문 현판을 내린다고 하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우리가 역사를 사랑하지 못하고, 존경하지 못하는 것도 결국 승자에 의한 역사왜곡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며 “문화재 관리는 현재의 정치적 이슈에서 한발 물러나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 고고한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친한 친구가 정치권 논란에 휘말려드는 것 같아 안타까워 편지를 썼다”고 덧붙였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유홍준 청장 “나는 아부나 하는 사람 아니다”▼

유 청장은 27일 김 의원의 서신에 대해 답신 보도자료를 냈다.

유 청장은 이 답신에서 “광화문 현판 교체는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1995년 경복궁 복원계획 속에 들어 있던 것이나 ‘뜨거운 감자’여서 누구도 건드리지 않고 미뤄져온 것”이라며 “올해 8·15광복 60주년 행사가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불가피하게 시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어떤 경우라도 승자에 의한 역사 파괴는 막아야 한다’는 김 의원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그러나 광화문은 결코 그런 맥락에서 볼 사안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유 청장은 또 현판을 정조의 글씨로 바꾸기로 확정한 것이 아니라 정조와 한석봉,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한 3개 안 중 하나를 3월 문화재위원회 합동회의를 통해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정조대왕과 비교했던 것은 참여정부가 개혁을 기치로 내걸면서 (대통령이) 정조 같은 역사적 사례(실패까지 포함)를 모르는 것이 안타까워 이를 배우시라는 뜻이었다”고 주장했다. 유 청장은 “내가 뭐가 아쉬워서 대통령에게 아부를 하나. 아부를 하려면 대통령이 내게 일 잘해 달라고 부탁을 해야지”라고 썼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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