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중도-좌파 활동]이동휘 박헌영 김두봉등

  • 입력 2004년 8월 26일 00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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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은 크게 우파 민족주의운동과 좌파 사회주의운동으로 대별된다.

한국사회주의 독립운동은 1918년 연해주에서 이동휘(李東輝) 등이 조직한 한인사회당을 필두로 소련의 영향 하에 여러 단체가 조직된다. 1921년 이들 조직은 사회주의혁명을 앞세운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과 민족해방을 앞세운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으로 양분된다.

국내에서도 1920년대 초 소련 및 일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신사상연구회(1923년) 화요회(1924년) 북풍회(1924년) 등이 조직된다. 이들 단체는 1925년 조선공산당(책임비서 김재봉·金在鳳)과 고려공산청년회(책임비서 박헌영·朴憲永)로 통합된다. 이들은 1926년 6·10만세운동을 주도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으나 1928년 코민테른 6차 대회에서 노동자·농민 중심이 아니라 지식인 중심 운동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해체된다.

이후 사회주의운동은 1940년 전후 중국에서의 무장투쟁과 국내에서의 조합운동 양상으로 전개된다. 중국 화북 지방에서는 1942년 김두봉(金枓奉) 김무정(金武亭) 최창익(崔昌益) 등이 중심이 돼 ‘조선독립동맹’(연안파)을 결성했고 그 휘하의 조선의용군 약 500명이 중국 공산당 군대와 함께 항일전쟁에 참가했다. 만주지역에서는 김일성(金日成) 등 만주파가 중국공산당 소속으로 항일 전투를 벌였다. 국내에서는 박헌영과 이현상(李鉉相) 등이 1939년 경성콤그룹을 결성해 노동조합과 농민조합을 중심으로 항일 투쟁을 전개했다.

그러나 이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은 상당수가 광복 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해 남한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정부 수립 후 독립유공 포상을 받은 9500명 가운데 사회주의 계열은 이동휘 등 100여명이며 대부분은 광복 전에 숨진 이들이다. 1980년대 이후 활발히 이뤄진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몇 년 전부터 몽양 여운형과 유정 조동호(榴亭 趙東祜), 죽산 조봉암(竹山 曺奉岩) 등 북한체제를 선택하지 않았던 중도좌파 지도자의 복권 문제가 제기돼 왔다.

한편 북한에서도 김일성을 비롯한 만주파를 제외하고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대부분이 숙청당한 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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