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동방박사의 선물’…“사랑은 잃지 말아라”

  • 입력 2004년 8월 20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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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주니어파랑새
사진제공 주니어파랑새
◇동방박사의 선물/에밀리오 파스쿠알 글 하비에르 세라노 그림 배상희 옮김/200쪽 1만3000원 주니어파랑새(초등 5년 이상)

청소년용 고전 시리즈가 또 나왔다. 이미 시공주니어 비룡소 웅진닷컴 등 어린이 청소년 전문출판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완역 시장에 주니어파랑새가 뛰어들었다. 결코 가볍거나 줄거리 요약이 아닌 완역으로 원작의 깊은 맛을 느끼고자 하는 고급 독자들이 많아졌다는 게 이들 출판사의 판단이다. 아직까지 기존 완역출판물이 영미권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 비해 이번에 나온 첫 다섯 권 중 두 권이 스페인권 작품이라 반갑다.

스페인 아동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동방박사의 선물’은 방황하는 청소년 울리의 이야기다. 고전이라고는 하지만 지하철이 주 무대가 되는 요즘 이야기이고 5월 시험기간에 가출을 결심하는 우리 청소년의 이야기다.

스페인의 동방박사 풍습부터 짚어야겠다. 동방박사는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선물을 바쳤다는 성경 속 인물들로, 스페인 어린이들은 1월 5일 밤에 동방박사들이 선물을 준다고 믿는다.

이 책은 ‘나는 여덟 살 때 동방박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울리의 말로 시작된다. 울리는 열여섯 살 되던 날 집을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나는 지겨운 수업과…우리 집과 가정불화와 굽이치는 불안감에서 도망쳤다.’

울리는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알게 된 장님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날마다 학교 대신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바로 장님을 만나던 날 집 우편함에 뜻밖의 선물, 책들이 놓이기 시작한다. 울리는 영리한 여자친구 칼리가 보냈다고 생각하지만 칼리는 동방박사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 무렵 아버지도 더 이상 집에 들어오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작가 파스쿠알의 엄청난 독서량을 말해주듯 각종 문학 작품이 시도 때도 없이 언급된다. ‘돈키호테’같은 스페인문학에서부터 ‘어린왕자’ ‘단추전쟁’ ‘크리스마스 캐럴’ 등 서유럽문학, ‘오디세이아’ ‘일리아스’ 등 고대 그리스 작품, ‘죄와 벌’ ‘전쟁과 평화’ 등 러시아 소설, ‘노인과 바다’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미국 문학까지 여러 나라의 책들이 소개된다. 소설뿐이 아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극작가들의 희곡, 남미 시인 보르헤스의 서정시, 독일작가 노발리스의 명언, 프랑스 만화가 에르제의 만화 및 성경까지 망라한다.

울리는 9월 초 시험에 통과하고 장님은 “아이들과 어떻게 대화해야할지 전혀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자식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어. 그 말을 할 수 있을 때는 아이들이 원하지 않고, 정작 아이들이 그 말을 원할 때는 말하지 못하지…나 역시 자식이었고 그래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데, 우리 아버지에게 뭔가 중요한 말을 하고 싶었을 땐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시고 없더구나.”

울리가 엄마로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날 오후 칼리는 울리에게 동화책 ‘밤비’를 읽어보라고 권한다.

“늙은 사슴이 아들과 작별하는 장이 있어. 늙은 사슴이 ‘내게 다가오는 시간에는 우리가 홀로 된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이지….”

울리가 장님의 다락방에서 아버지가 직접 쓴, 바로 그 ‘밤비’ 24장의 마지막 구절을 발견하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잘 있거라, 내 아들아. 너를 무척 사랑했단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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