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잊은 거창 "연극과 열애중"…국제연극제 17일까지

  • 입력 2004년 8월 6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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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군 수승대의 수상무대에서 공연 중인 세네갈팀.- 사진제공 거창국제연극제 사무국
경남 거창군 수승대의 수상무대에서 공연 중인 세네갈팀.- 사진제공 거창국제연극제 사무국
지금 덕유산은 싱싱한 숲과 계곡으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을 넉넉히 품어주고 있다. 자연과 인간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이곳에는 눈부신 ‘특별한 장소’가 존재한다. 경남 거창군에 있는 수승대, 요즘 이곳에서 문화의 열정들이 피어난다. 벌써 16회를 맞이하는 거창국제연극제(www.kift.or.kr)다.

지난달 31일 개막한 거창국제연극제는 17일까지 9곳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42개 단체의 총 150회 공연이 설렘으로 관객을 맞고 있다. 아름다운 계곡과 역사의 흔적들이 연극의 공간, 축제의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1일 오후 2시 독일 극단 스타피규렌은 수승대 일대에서 거리 인형극을 벌였다. 노란 피노키오의 재롱이 아이들의 환상을 자극하며 폭염의 오후에 활력을 준다. 뜨거운 태양 아래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수상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세네갈의 기운찬 음악을 너그럽게 듣는다.

이날 밤 돌담극장. 반복되는 일상의 본질을 강렬한 신체 이미지로 그린 일본 스토어하우스 극단의 퍼포먼스 ‘비행탈출’이 선보였다. 공연 시간 1시간 전부터 줄이 100m 이상 서 있었다. 입장이 지연되자 혹시라도 공연을 보지 못할까봐 한 관객이 조바심을 낸다. “부산에서 이 공연을 볼라꼬 이까지 왔는데….”

3일 밤에는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국지성 소나기였다. 하지만 나누어 주는 비옷을 챙겨 입고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젊은 연인, 아이들은 연우무대의 연극 ‘사랑은 아침햇살’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위천극장의 600석이 모자라도록 관객은 꽉 들어차 있었다. 다행히 무대를 부술 것같이 내리던 비는 감동이라도 한 듯 뚝 그쳤고 시원한 여름밤의 정서만 남겼다. 사람들에게는 공연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닌 그 자체를 즐기는 유희의 미학이 있는 듯하다.

공연이 끝나면 여기저기 카페에서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여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그날 본 공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밤에는 페루, 세네갈의 음악연주에 연신 환호성과 갈채를 보낸다. 이는 이탈리아 베로나나 프랑스 아비뇽이 아니라, 바로 한국 거창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광경이다. 프랑스 극단의 연주자 디디에 프티는 “이렇게 다양한 관객층이 깊은 열정으로 즐기는 연극제는 처음이다”라고 경이를 표한다.

남은 축제 기간 중 루마니아 극단 다야의 ‘셰익스피어 퍼포먼스’, 극단 청우의 ‘웃어라 무덤아’ 등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은 자연의 품속에서 더욱 더 축제의 신명을 만들어 낼 것이다.

거창은 천혜의 자연과 문화에 목마른 사람들이 있기에 이미 성공한 국제연극제를 치르고 있다. 이종일 연극제 집행위원장의 말대로 전 지역의 무대화를 꿈꾸는 거창은 지금 연극축제에 푹 빠져 있다.나 진 환 연출가·서울종합예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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