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향기]‘변화’에 타는 목마름…‘멘토’형 책으로 사색

  • 입력 2004년 7월 9일 17시 54분


2004년 상반기. 사람들은 책에서 무엇을 원했던 것일까.

베스트셀러가 독서 패턴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징후’는 그 순위 속에 드러난다.

상반기 베스트셀러 중 변화의 ‘흐름’을 드러내는 것으로 ‘아침형 인간’(한스미디어) ‘마법천자문’(아울북)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영진.com) ‘연금술사’(문학동네) ‘선물’(랜덤하우스중앙) 등을 꼽을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이종(異種)으로 보이지만 기획 의도와 서술 형식에서 이 책들은 서로 닮은 모습을 공유하고 있다.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는 지난해 11월 출간된 후 25만부가 팔린 요리책. 요리책의 전통적인 독자로 간주되는여성만이 아니라 남성들도 책을 샀다. 무엇보다도 저자 자신이 인터넷에 요리사이트를 운영하는 독신 남성이었다.출판계에서는 이 책의 흥행을 두고 “독자는 있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침형 인간’과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의 닮은 점은 철저히 ‘나’를 주어로 하는 DIY(Do It Yourself)형 책이라는 점이다. ‘피안에 있는 마음의 양식’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삶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내 손안에 잡히는 기술을 제시한 것이다. 출판계 일각에서는 인문서의 쇠퇴, 가벼운 실용서의 범람을 걱정하지만 그 가벼운 실용서를 찾는 독자들의 책 고르는 이유는 이처럼 과거에 비해 보다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것으로 변모하고 있다.

지난달 5권까지 나온 ‘마법천자문’은 7월 첫 주 현재 총 80만여부가 팔린 학습만화책. 상반기 출판계에서 대표적인 ‘기획의 승리’로 꼽히는 책이다. 학습과 오락을 겸한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계열의 이 책이 잘 팔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부록인 ‘한자카드’를 꼽는다. 출판사측은 어머니 모니터 요원들을 기획에 동원해 유희왕, 탑블레이드 등 어린이용 인기만화의 캐릭터 상품처럼 카드를 끼워주는 것으로 아이들의 독서 동기를 유발하는 전술을 이끌어냈다.

소설 ‘연금술사’의 화려한 부활에 대해서는 책을 낸 출판사조차도 “설명이 잘 안 된다”고 말할 정도다. 1990년대 후반 출간됐다가 2001년 다시 발간된 이 책은 지난해 8월부터 판매에 불이 붙기 시작해올 상반기에만 30만부가 팔렸다.

‘연금술사’와 처세형 경영서의 베스트셀러인 ‘선물’은 얼핏 보아 대각선의 양 끝점에 있는 듯하지만 닮은꼴이다. 두드러진 공통점은 삶의 진리를 아는 현인이 인생의 지혜를 축약해서 전해준다는 것이다. 출판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은수씨는 이에 대해 “역할 모델이 없는 시대여서인지 멘토형 책이 인기를 끄는 것 같다. 그러나 가르침은 주되 그 방식이 어렵지 않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우화 형식이 선호된다”고 분석했다. 변화는 계속된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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