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애니메이션으로 그린 불멸의 사랑 ‘천년여우’

  • 입력 2004년 7월 7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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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실사 영화를 보는 듯한 독특한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구축한 일본 곤 사토시 감독의 ‘천년여우’. 사진제공 프리비젼
마치 실사 영화를 보는 듯한 독특한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구축한 일본 곤 사토시 감독의 ‘천년여우’. 사진제공 프리비젼
후지와라 지요코는 전성기에 돌연 자취를 감춘 뒤 30년 간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전설적 여배우. 제작자 다치바나는 그녀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맡는다. 그가 후지와라를 찾아가 그녀가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을 여는 열쇠’를 내놓자 그녀의 말문이 열린다. 그녀의 삶과 연기인생에는 소녀시절 우연히 마주쳤던 사상범을 향한 불멸의 사랑이 관통하고 있었다.

9일 개봉되는 일본 곤 사토시 감독의 두 번째 애니메이션 ‘천년여우(千年女優)’는 △격동기를 살아온 여배우의 일대기(사실) △여배우가 출연한 시대 애정극(영화 속 영화) △다치바나의 판타지(환각) 등 층위가 다른 3개의 이야기를 긴박하게 교차시킨다.

그러나 얽히고설킨 구성을 한 꺼풀 들춰보면 과거와 현재, 사실과 허구가 동일한 패턴을 이루며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복잡해 보이지만 다 보고나면 어딘가 단조롭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환각과 현실을 교직시킨 감독의 데뷔작(‘퍼펙트 블루’)에 비해 이야기의 부피감과 역동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는 여배우의 파란만장한 일생이라는 서사 형식과 스케일을 통해 구성의 단점을 메워간다.

곤 사토시 감독은 영리하게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선입견을 배반하는 방식으로 고유한 입지를 구축해 왔다. 만화적 꿈과 과장을 자제한 채 건조하고 사실적인 화면과 구성, 캐릭터를 이야기 전개의 추진력으로 삼는다.

이같은 스타일은 ‘실사 영화로 옮겨도 손색이 없다’는 그럴 듯한 해석과 평가를 낳게 마련이지만, 사실 아이러니다. 만화적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이 새로운 만화적 상상력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은.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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