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국 前총장, 부인과 주고받은 ‘속옷편지’ 공개

  • 입력 2004년 6월 2일 19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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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성 여사 자주 만남. 홍규 위해 기도함.”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우리나라인데 우리가 무슨 죄가 있나요? 죄가 없고 착한 찬국씨는 하늘과 땅이 압니다.”

‘세계환경의 날’(5일)을 맞아 환경재단(이사장 이세중·李世中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과 롯데백화점이 6일까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1층에서 열고 있는 ‘136포럼’(대표 문국현·文國現 유한킴벌리 사장) 회원들의 애장품 전시회.

넥타이 모자 가방 곰방대 부채 등 나름의 사연을 담은 물건들 사이에서 유난히 관람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전시물이 있다. 누렇게 색이 바랜 흰색 팬티 고무줄들. 김찬국 전 상지대 총장(77·사진)이 연세대 신학대 학장으로 재직 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0년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를 때 아내 성창운(成昌運·75)씨와 주고받았던 ‘옥중편지’다.

가족 면회조차 금지하는 군사독재정권의 통제를 피하기 위해 김 전 총장은 세탁물로 나가는 팬티 고무줄에 먹지를 대고 못으로 글자를 새겨 보냈고, 성씨는 새 속옷을 보내며 역시 같은 방법으로 답장했다.

“새해에는 자유민주주의 성취되기를 매일 기도. 자유 평화 정의 실현 기도.”

“당신을 위해 기도하며 물심양면 도와주는 수많은 분들이 있으니 건강하고 용기 얻으세요.”

팬티 고무줄에 쓰인 김찬국 전 상지대 총장의 옥중 편지. “동아 탄압하는 정권 넘어진다”라는 글귀가 씌어 있다.-변영욱기자

대학 시절에 만나 평생 연인이자 동지로 지내온 두 사람의 사랑은 김 전 총장이 서대문형무소의 외롭고 추운 독방생활을 견디는 데 큰 힘이 됐다. 장남 창규(昌圭·연이산부인과 원장)씨는 “이 옥중편지는 어머니께서 혼자 간직하시다가 얼마 전에 꺼내 놓아 가족들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편지 가운데는 당시 독재정권과 맞섰던 동아일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밝힌 부분도 여러 군데 발견된다.

부인 성씨가 정부의 ‘동아일보 광고탄압’에 맞서 가족들이 돈을 모아 동아일보에 광고를 냈다는 소식을 전하자 김 전 총장은 “동아일보 후원 잘했음. 동아 탄압하는 정권 넘어진다”라고 답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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