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4년 4월 22일 17시 35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최근 TV 드라마에 여주인공들이 무리지어 나오는 ‘여초’ 현상이, 영화에는 남주인공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남초’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드라마는 자매나 단짝의 형태로 여주인공들이 부각되는 반면, 영화는 남주인공들을 ‘투톱’이나 ‘스리톱’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여성의 부상(浮上) 등 사회변화와 매체특성이나 소비층에 따른 차이 때문으로 분석되지만, 드라마의 경우 “일시적 트렌드일 뿐”이라는 시각도 있다.
○ TV 드라마, 여자 쏟아지다
21일 첫 방영된 MBC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서른이 넘은 여자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좌충우돌하는 방송사 여기자 이신영(명세빈), 바람피운 남자 친구를 두들겨 패는 스튜어디스 진순애(이태란), 재벌가 아들과 결혼했다가 맞바람을 피워 파경에 이른 장승리(변정수)로 여성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드러내고 있다.
24일 첫 방송되는 SBS ‘작은 아씨들’은 아버지에 의해 강하게 자라는 네 자매의 이야기. 가정에 대해 과도하게 부담을 갖는 큰딸 혜득(박예진), 반항적인 미득(유선), 순종적인 현득(박은혜), 귀염둥이 넷째 인득(이윤미)의 사랑과 야망이 펼쳐진다.
주말드라마는 자매들의 독무대다. MBC ‘장미의 전쟁’은 오미연(최진실) 미란(송선미) 자매의 일과 사랑에, KBS2 ‘애정의 조건’은 강금파(채시라) 은파(한가인) 자매의 우여곡절 인생에 각각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영화, 남자 쏟아지다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북파부대 공작원들과 형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들. 심지어 ‘실미도’에 나오는 여자는 한 명뿐이다. 올해 1월 1일∼4월 23일 개봉한 한국 영화 21편의 주인공 성별을 분석하면 남자 35명, 여자 16명으로 남자가 압도적이다. 특히 ‘목포는 항구다’(차인표 조재현) ‘맹부삼천지교’(조재현 손창민) 등 코미디 영화에는 ‘남초’가 뚜렷하다.
올해 개봉 영화 중 여자 주연이 이끌어 가는 영화는 ‘미소’(추상미 주연) ‘사마리아’(곽지민 서민정 주연) 정도. ‘그녀를 믿지 마세요’(김하늘) ‘홍반장’(엄정화) 등은 여자를 주연으로 내세웠지만 남자 주인공들과 짝을 이루는 로맨틱 코미디다. 또 ‘범죄의 재구성’처럼 여주인공을 내세우더라도 줄거리의 전개상 보조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드라마는 현실을, 영화는 판타지를 보여주는 매체 특성의 차이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MBC 박종 제작본부장은 “TV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에 잔잔한 재미를 끌어낼 수 있는 여성들의 섬세한 삶을 많이 다루지만, 영화는 비현실적인 환상을 보여주기 위해 극적인 남자들의 삶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매체 소비층에 따른 해석도 있다. 주부가 많이 보는 드라마는 여성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는 반면 영화는 마초적이고 남성 노스탤지어적인 요소로 ‘남성 관객’에게 어필하려 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주 관객층은 20대 오피스 레이디이나, 관객 300만 이상의 ‘대박’을 기록하려면 남성 관객을 잡아야 한다는 게 영화계의 진단이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드라마는 전문직 여성을 통해 여성 중심의 판타지를 생산하고 ‘여성작가-여성주인공-여성시청자’의 연대를 만든다”며 “영화는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남자들이 느꼈던 억압을 분출하는 데서 판타지를 찾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의 부상 등 세태 변화의 일면으로 읽히기도 한다. ‘작은 아씨들’의 SBS 허웅 CP는 “여성의 정계 진출 등 여성이 사회를 이끄는 세태를 반영해 드라마에서 적극적인 여성을 담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TV 드라마의 여초 현상은 일시적 트렌드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SBS 운군일 드라마 총괄 CP는 “여성들의 드라마 바람이 한 차례 지나가면 다시 남자 주인공들을 앞세운 드라마들이 쏟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