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문인수/실

  • 입력 2004년 2월 8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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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나는 그 동안 답답해서 먼 산을 보았다.

어머니는 내 양손에다 실타래의 한 쪽씩을 걸고

그걸 또 당신 쪽으로 마저 다 감았을 때

나는 鳶(연)이 되어 하늘을 날았다.

밤 깊어 더 낯선 객지에서 젖는 내 여윈 몸이 보인다.

길게 풀리면서 오래 감기는 빗소리.

- 시집 ‘달북’(동학사) 중에서

나도 어린 시절, 어머니 양 무릎에 걸쳤던 명주실 타래를 벗겨 두 손에 걸어드린 적이 있다. ‘아이 팔 아파. 엄마, 빨리 감아.’ 어머니가 재게 돌려 감는 실패의 뱃살이 볼록하니 차오르는 게 신기하기도 했지만 더뎌서 성이 차지 않았다. ‘어서 실타래 풀어준 다음 고추밭 머리 새덫 놓으러 가야지.’ ‘어서 커서 지긋지긋한 산골 오두막 떠나 도시로 나가야지.’

타향살이 이십 년 만에 돌아다본다. 아하 내 몸을 앞산 너머 초승달처럼 은근히 띄워 올린 게 어머니였구나. 내 손의 실타래 죄 감은 다음 바람결에 나를 풀어 놓으셨구나. 오래 고향을 떠나 있어도 은근히 명치께를 당기는 게 어머니의 연줄이었구나. 나랑 같이 떠나와 전깃줄에 매달려 우는 연들아. ‘길게 풀리면서 오래 감기는’ 어머니의 얼레질 소리를 듣고 싶구나.

반칠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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