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불혹에 ‘김치볼’우승… 슈퍼볼 MVP 된 기분”

  • 입력 2004년 2월 3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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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스포츠 행사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는 미국의 ‘슈퍼볼’이 열리기 하루 전인 1일 한국에서는 국내 미식축구 최강자를 가리는 ‘김치볼’이 열려 사회인 대표 ‘캡스’ 팀이 영광의 우승컵을 안았다.

비록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없었지만 창단 6년 만에 첫 우승을 거머쥔 이 팀의 터줏대감이자 최고령 선수 박재훈(朴載勳)씨의 감회는 남다르다. 우리 나이로 마흔이지만 동아대와의 결승전에서도 라인맨으로 뛰며 맹활약을 펼쳤다.

박씨가 미식축구를 처음 접한 것은 1983년 성균관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운동장에서 미식축구부 선배들이 운동하는 것을 보고 첫눈에 반했어요. 미식축구는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우리 본능 속에 감춰진 전투적인 에너지를 쏟아붓는 운동이에요. 또 상대를 분석해 수백 가지의 작전을 구사하는 것도 큰 매력입니다.”

박씨는 그 강한 매력 때문에 못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미식축구를 떠나지 못했다. 캡스팀이 창단된 것은 1998년. 박씨는 대학 선배인 장종식 감독과 함께 팀 창단의 주축 역할을 했다.

“여러 대학 미식축구부 졸업생들이 열정 하나로 뭉쳤죠. 응원객도 없고 경제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것이 조금 힘들긴 해요.”

하지만 박씨의 ‘미식축구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20대엔 감정에 휘둘려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많았어요. 나이가 드니 오히려 냉철하게 경기를 읽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

미식축구는 경기장에서 10시간 뛰는 것보다 전술분석을 2시간 더 하는 게 도움이 될 정도로 머리를 써야 하는 ‘멘털 스포츠’이기 때문이란다.

“취미로 하는 운동이지만 번번이 서울지역리그 준우승에 그치자 ‘우승하기 전엔 유니폼을 벗지 않겠다’는 오기도 생겼지요.”

‘이레기술’이라는 환경기술 중소업체를 운영하는 박씨는 “이제 목표를 달성한 만큼 주전 자리는 후배에게 내주고 뒤에서 맘 편하게 미식축구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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