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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1월 4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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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성 혁명의 불을 지핀 휴 헤프너의 시카고 저택은 그야말로 진경이었다. 실내 풀장의 물속을 환히 들여다보며 미희들의 ‘속살’을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된 지하 바는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것은 플레이보이의 또 다른 센터폴드(centerfold)이기도 했다. 잡지 한가운데에 누드 사진을 접어 넣는 페이지를 뜻하는 이 말은 헤프너가 만든 신조어다.
그가 잡지를 창간한 것은 1953년. 미 전역에 매카시즘 선풍이 매섭게 몰아칠 때였다.
헤프너는 매카시즘의 정치적 위선을 꿰뚫어봤다. 청교도적 가정윤리가 강요되던 냉전의 살얼음판 밑에서 그는 끓어오르는 일탈(逸脫)에의 갈망을 봤다. 그는 메릴린 먼로를 창간호의 표지모델로 내세웠고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먼로의 도발은 제임스 딘의 반항이었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버닝 러브(Burning Love)’였다.
헤프너는 영리했다.
그는 미국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짚었다. 플레이보이는 매혹적인 글래머들 사이에 사르트르나 카스트로 같은 거물들의 인터뷰를 실었다. 그리고 그 앞뒤로 자동차와 패션, 최고급 오디오 광고를 삽입했다.
이를 간파한 래리 플린트는 “플레이보이는 가짜다. 섹스를 가진 자들의 선민의식으로 도배했다”고 비난했다. 플린트는 저질 포르노를 지향하는 ‘허슬러’의 발행인이다.
올해 플레이보이 창간 50주년을 맞은 헤프너는 “섹스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경계 밖에 있기 때문에 섹스에 좋은 이름을 주려고 노력해왔다”고 지난날을 회고했다.
섹스는 넘치면 외설이고 모자라면 위선이다. 그것은 시대의 야유와 멸시 속에서도 끊임없이 월경(越境)을 시도해왔다. 섹스와 문명의 충돌은 유명한 ‘래리 플린트의 역설’을 낳았다.
“살인은 불법이다. 그러나 살인 장면을 찍어 뉴스위크에 실으면 퓰리처상을 받는다. 섹스는 합법이다. 그러나 섹스 장면을 찍어 잡지에 실으면 감옥에 간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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