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서]서정보/“뭐, 성당에서 연극을 한다고?”

  • 입력 2003년 10월 31일 18시 15분


“결혼 10년 만에 처음 연극을 봤어요. 연극은 서울 대학로에서나 보는 줄 알았는데 가까운 성당에서 보니 좋군요.”

지난달 30일 오후 8시 경기 안양중앙성당 지하강당에서 연극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을 본 주부 나희선씨(33)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주부가 대부분인 관객들은 “정말 오랜만에, 아니 생전 처음 연극을 봤다”고 말했다.

안양중앙성당과 경기 용인시 신갈성당에선 지난달 23일부터 5일까지 연극 ‘오아시스…’(극단 모시는사람들)와 ‘TV동화-아름다운세상’(떼아시네)을 각각 공연 중이다. 6일부턴 성당끼리 작품을 바꿔 다시 2주 동안 공연한다. 관람료는 1만원.

이날 200석 규모의 안양중앙성당 공연장은 객석의 90%가 찼다.

세탁소를 무대로 치매노인이 맡긴 세탁물에 들어있는 거액의 재산을 찾으려는 소동을 그린 ‘오아시스…’는 서울공연예술제 초청작. 관객들은 ‘마음의 때’가 가득 찬 사람들을 세탁기에 넣고 깨끗이 세탁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열띤 박수를 보냈다.

평소 비어 있는 성당을 공연장으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천주교 주교회의 홍창진 신부와 문화관광부 오지철 차관이 서로 이야기하던 도중 우연히 나왔다. 홍 신부는 “공연장 부족으로 고민하는 극단의 어려움을 듣고 뉴욕의 성패트릭 성당이 매년 한 차례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공연을 갖는 것처럼 성당에서 공연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성당은 기본관객 확보를 위해 신자 수(안양중앙성당 1만명)가 많거나 아파트 밀집지역(신갈성당)을 선정했다. 이곳 주민들은 ‘걸어서 5분 거리’의 공연장에 기꺼이 발길을 옮겼다.

주연인 세탁소 주인 역을 맡은 조준형씨(40)는 “음향시설이나 좌석배치 등은 전문 공연장보다 미흡하지만 대학로 공연보다 객석의 반응이 더 뜨거웠다”고 말했다.

문화관광부는 이번 공연의 성과를 평가해 내년부터 성당, 사찰, 교회 등 30곳의 종교공간으로 공연장을 확대하기로 했다.

안양=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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