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山別曲]<8>시인 류기봉

  • 입력 2003년 10월 29일 18시 06분


코멘트
시인 류기봉씨에게 포도나무와 사람은 생명이란 점에서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존재다. 철 지난 포도밭에서 시인은 사색에 잠긴다. -박주일기자
시인 류기봉씨에게 포도나무와 사람은 생명이란 점에서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 존재다. 철 지난 포도밭에서 시인은 사색에 잠긴다. -박주일기자
찬바람 한 줄기를 타고 포도나무 잎사귀 하나가 팽글팽글 땅으로 돌아간다.

푸른 계절을 넘어 온 포도밭(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에서 시인 류기봉씨(38)와 그의 아버지는 분주히 겨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두더지집을 파헤치는 흰 개 ‘대박이’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 흙을 닮은 마른 잎과 회색 나뭇가지에 달린 포도송이, 아직도 푸릇한 쑥과 토끼풀…. 자연의 빛깔들이 빚어낸 조화(調和)로 충일한 포도밭과 시인 부자(父子)는 썩 잘 어울린다.

류씨가 1990년 대학을 졸업한 뒤 부모가 15년 동안 해온 포도농사를 같이 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단지 시를 잘 쓰기 위해서였다. “등단해도 한동안은 ‘밥벌이’가 마땅치 않을 테니 몇 년간 농사를 짓겠다”며 부모를 설득했다. 그러나 오직 시만 생각하는 그에게 농사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했다. 시키는 일만 겨우 해내고 한발 물러선 아들에게 부모의 지청구가 쏟아졌다.

93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뒤에도 일상엔 변화가 없었다. 그러던 중 94년 겨울 충북 괴산시 자연농업생활학교에서 접한 ‘자연농법’이 그의 ‘나른한 정신’에 찬물을 쏟아 부었다. 포도밭으로 돌아와 나무 밑동을 파보니 뿌리가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제초제에 젖은 풀들이, “이제 제발 그만하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아 가슴이 섬뜩했다. 그의 고민이 시작됐다. ‘죽어가는 밭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흙의 죽음’ 앞에서 류씨는 다짐했다. “숲에서 자라나는 나무들처럼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 포도나무를 키우겠다. 흙에서 자라는 모든 것을 감싸 안겠다.”

이듬해 퇴비만으로 농사를 짓다 1000그루의 포도나무 가운데 700그루가량을 잃었다. 그 해 거둔 총소득은 200만원. 어렵고 힘들었지만 다시 팔을 걷어붙였다. 근처 한의원에서 약을 달이고 남은 한약재를 걷어와 발효시킨 쑥 미나리 산더덕과 함께 밭에 뿌려줬다. 하지만 튼실한 열매는커녕 나무에 잎만 무성해졌다. 그는 포도나무와 주변을 유심히 관찰했다. 같은 밭이라 해도 곳곳의 토질과 일조량, 나무 생육상태가 달라 제각기 돌보는 방법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 무릎을 쳤다.

“획일적 생산을 위한 ‘공장’이 아니라 ‘모두가 편안한 세계’, 바로 이것이구나.”

땅의 ‘편안한 세계’가 농부 시인의 몸마저 편하게 해준 것은 아니다. 유기농법엔 일반 농법보다 품이 서너 배는 족히 들어간다. 요즘 그는 ‘생명’이라는 1단계를 지나 2단계 ‘문화’로 진입하고 있다. 류씨가 아버지처럼 모시는 김춘수 시인(81)의 조언 덕분이다. “프랑스의 포도밭에서는 문화를 자주 접하기 힘든 마을 주민들을 위해 시낭송, 노래공연 등을 자주 연다. 이제는 ‘문화 농업’을 해보아라.”

98년 화가 이은주와 함께 시화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부터는 ‘작은 예술제’란 이름으로 여름 포도밭에서 시인과 독자들이 어우러지는 축제를 열고 있다.

시인은 “포도밭에서 겪은 모든 일들이 침엽수 같던 나와 시를 활엽수처럼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그의 시에서 포도나무는 어머니이고 아내이자 연인, 아들딸이다. 지금 류씨는 흙에서 시인과 포도나무가 더불어 자라는 ‘포도나무 문학관’을 꿈꾸고 있다.

▼약력 ▼

1965년 경기 가평 출생

1990년 한국성서대 외국어학과 졸업

1993년 시인 김춘수, 이수익 추천으로 ‘현대시학’ 통해 등단

2001년 시집 ‘장현리 포도밭’(문학세계사) 발표

남양주=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