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권력 뒤엔 대중이라는 ‘공범’있다”

  • 입력 2003년 10월 17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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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체제, 나치즘, 파시즘은 20세기의 대표적 독재 정권이다. 독재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힘을 강제하는 권력과 이에 저항하는 핍박받는 민중이란 이원론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역사적으로 민중이 독재 권력의 희생자인 동시에 공범자였다고 주장한다. 독재 체제는 경기 침체와 사회적 혼란을 틈타 대중의 절망과 증오심을 교묘히 이용해 그들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냈다. 학자들은 그래서 대중의 지지를 받는 독재를 ‘대중독재’로 정의하자고 제안한다. 이 같은 역사적 현실을 외면한다면 진정한 독재 청산도 없고 현재와 미래의 파시즘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양대 인문학연구소 주최로 24∼26일 서울 성동구 행당동 한양대 대학원 화상회의실에서 열리는 ‘강제와 동의:대중독재에 대한 비교사적 연구’ 국제학술대회(대회장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에서는 국내외 학자들이 한국 일본 유럽의 독재 체제에 대한 비교연구를 통해 살펴 본 권력이 대중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메커니즘과 대중독재가 가능한 시대적 상황을 발표한다.

이남희 UCLA 교수(한국현대사)와 황병주 강사(한양대 박사과정)는 ‘박정희 정권기 지배담론과 대중’이란 공동 발표논문에서 박 정권이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낸 일등공신으로 새마을운동을 꼽으며 이를 집중 조명했다. 박 정권은 강한 경제적 상승욕구와 함께 의미 있는 사회적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하층농민들의 열망을 ‘다 함께 잘 살기 위한 운동’이란 평등주의적 새마을운동으로 수렴해냈다는 것이다.

이 교수팀은 박 정권이 중등교육 평준화를 실시하는 등 근대적 대중정치의 기술을 구사했는데 이는 일종의 ‘원한의 정치’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1963년에 발간한 저서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주지육림의 부패 특권사회를 보고 참을 수 없어 거사한 것이 5·16 혁명”이라고 주장하고 스스로를 지주나 귀족과는 구분되는 ‘서민’으로 규정함으로써 대중적 지지를 끌어내려 했다는 것이다.

독일 함부르크 사회연구소 미하엘 빌트 박사의 발표논문 ‘나치의 민족공동체:새로운 정치질서’에 따르면 나치즘 역시 열악한 경제상황 속에서 하층민들의 신분상승 욕구를 자극해 대중의 합의를 얻어낼 수 있었다. 히틀러가 이끄는 젊고 참신한 국가사회당(나치)은 1933년 정권을 잡은 뒤 국가재정의 상당 부분을 군수산업에 투자해 1936년 800만명에 이르던 실업자를 모두 구제하고 1938년에는 국민총생산(GNP) 4% 성장이란 경제적 성과를 거두었다.

공공 부문의 성장은 새롭고 더 나은 일자리를 창출했고, 연간 휴가일수는 3일에서 12일로 늘어났다. 노동자들은 사회적 신분이동이 가능하고 평등사회가 구현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또 유대인을 추방해 법률가 의사 교수 공직자 등 중상층 계급의 성공기회도 늘렸다.

김용우 한양대 연구교수(사학과)의 논문 ‘이탈리아 파시즘’에 따르면 파시즘이 대중의 합의를 얻어내기 위해 주력한 부문은 교육과 문화였다. 파시스트 교사 조직을 창설하고 단일 교과서 제도를 채택했으며 700만명의 청소년 조직을 규합, 스포츠와 여가활동을 통해 파시즘의 교의를 주입했다. 또 대규모 집회와 전시회, 연극, 건축 등을 통해 ‘현재 위기에 처한 민족이 곧 새로운 유형의 공동체로 부활할 것’이란 신화적 파시스트 이데올로기를 대중에 전파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모스크바 과학아카데미 러시아사 연구소 알렉산드르 골루베프 박사의 논문 ‘스탈린주의’ △일본 도쿄외국어대 이와사키 미노루 교수의 논문 ‘일본의 총력전 체제’ △영국 글래모건대 스테판 버거 교수의 논문 ‘독일과 영국의 총력전 체제’ 등이 발표된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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