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늦가을 ‘굴 한접시’… 보약 따로 없어요

  • 입력 2003년 10월 12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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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회의원들이 생굴을 먹고 식중독에 걸린 일이 있었다. 또 전국적으로 생굴 식중독 파문이 일기도 했다. 국립보건원은 장염 비브리오균을 원인균으로 발표했다. 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에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 보통 생굴을 먹으려면 해수 온도가 18도를 넘지 말아야 하는데 문제가 된 굴을 채취할 당시 온도는 26도 안팎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높은 수온으로 인해 세균이 활동할 가능성이 커졌는데도 이를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했기 때문에 식중독 파문이 확산된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요즘 수온은 18도 아래위를 오락가락하고 있다. 그러나 곧 떨어질 전망이다. 바야흐로 ‘굴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

#초고추장에 척, 꿀꺽. 캬~

눈을 감는다. 바다를 상상한다. 생굴을 한 젓가락 입에 넣는다. 입안에 비릿하면서 짭짜름한 바다 향(香)이 가득 퍼진다.

굴은 늦가을로 접어들면서 맛과 향이 최고조에 이른다. 젓갈이나 굴김치 등 여러 방식으로 요리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생굴을 그대로 먹는 게 제격이다. 초장 또는 고추장에 찍어 먹을 때 더욱 맛이 좋다. 레몬즙을 짜 굴에 올려놓아도 맛이 일품이다. 레몬의 신맛인 구연산이 굴에 함유돼 있는 철분과 결합해 흡수가 잘되는 구연산 철분으로 변한다. 또 신맛이 첨가되면서 굴이 상큼해진다.

그러나 굴을 아무 때나 먹는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보리가 패면 굴을 먹지 말라’고 했다. 일본에서도 ‘벚꽃이 지면 굴을 먹지 말라’는 속담이 있으며, 서양에서는 ‘알파벳의 R자가 없는 달, 즉 5∼8월에는 먹지 말라’고 했다. 5∼8월에는 산란기이기도 하지만 ‘베네르빈’이란 독성분이 나와 식중독의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굴 풍년이 되도록 하소서' 한 어부가 양식한 굴을 수확하고 있다. 굴은 따로 보약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영양이 풍부하다 사진제공 수협중앙회

#굴을 사랑한 위인들

굴은 동양보다 서양에서 일찍부터 먹어왔다. 고대 로마인들이 먹기 시작했으며 기원전 95년경 첫 양식이 이뤄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반면 동양에서는 5세기 초 중국 송나라에서 대나무에 굴을 끼워 양식한 것이 처음이다.

국내에서는 15세기 중반 양식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본격적인 굴 양식은 1897년 원산만 부근 바다에서 이뤄졌다.

굴의 매력에 빠져 이를 즐겼던 위인은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서양에서는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지 않으면서도 유독 굴만은 날것을 즐겨 먹었다.

나폴레옹은 치열한 전투현장에서도 식탁에 굴이 올라야 비로소 식사를 했다고 한다. 대문호 발자크 역시 한 번에 1000개 이상의 굴을 먹을 정도의 ‘굴 마니아’였다.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도 한 자리에서 175개의 굴을 먹어 주변 사람을 놀라게 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비아그라, 물렀거라

‘Eat Oysters, Love Longer(굴을 먹어라. 그러면 오래 사랑하리라).’

굴은 예로부터 최고의 ‘천연 정력제’로 각광을 받았다. 서양에서는 굴을 정력제로 여겨 굴을 먹으면 섹스를 길게 할 수 있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

이는 의학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은 아니다. 굴에는 글리코겐과 아연(Zn)이 많이 들어있다. 글리코겐은 에너지원이고 아연은 정액을 구성하는 주요 성분 중 하나. 따라서 굴을 먹으면 에너지가 넘치고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호르몬이 활성화되면서 섹스 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실제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미국 뉴욕대에서 실시한 연구에서 정자가 부족한 남성에게 굴과 비타민C를 두 달 동안 먹였더니 정자 수가 60% 정도 늘어났다는 것. 이런 이유로 고대 유대인 등 금욕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굴은 금기 식품이기도 했다.

#아이들에겐 해롭다?

굴을 가리켜 ‘바다의 우유’라고 한다. 단백질 함량은 우유(3%)보다 많은 10%에 이른다. 특히 타우린과 메티오닌, 시스테인 등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며 이 중 타우린은 그 어느 수산물보다 더 많이 함유돼 있다. 또 비타민과 칼슘, 철분, 아연 등 각종 미네랄이 풍부해 ‘영양의 보고’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동의보감에서는 ‘굴은 바다에서 나는 음식 중 가장 귀한 것이며 먹으면 향기롭고 피부를 아름답게 하며 안색을 좋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칼슘과 비타민이 풍부해 변비를 막고 피부를 곱게 해 여성의 미용식품으로도 좋다. 또한 굴에 들어있는 DHA나 EPA 등은 피떡(혈전) 생성을 억제해 고혈압과 뇌중풍, 동맥경화 등 성인병을 예방하는 데 좋다.

먹고사는 게 힘들던 시절 부모들은 ‘아이들이 굴을 먹으면 독이 몸에 퍼진다’고 만류했다. 그러나 이는 틀린 사실이다. 굴의 당질은 대부분 글리코겐으로 소화가 잘된다. 따라서 어린이나 노인, 환자가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영양식이다. 귀한 음식을 어른에게 드리려는 풍습이 이런 오해를 만든 것이리라.

(도움말=한국해양대 해양과학부 임선영 교수, 경희대 강남한방병원 이경섭 교수, 삼성서울병원 영양팀 조영연 파트장)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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