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프리다 칼로'…"죽도록 자화상만 그렸다"

  • 입력 2003년 10월 10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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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이 대부분인 칼로의 그림은 상처 입은 자신의 육체와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작은 사슴’(1946). 사진제공 민음사

자화상이 대부분인 칼로의 그림은 상처 입은 자신의 육체와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작은 사슴’(1946). 사진제공 민음사

《그림과 사랑으로 불꽃같은 삶을 태워 올린 멕시코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평전이 발간됐다. 칼로의 일기와 편지 등 1차 사료를 객관적으로 옮겼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 책은 영화로도 각색돼 11월 중 국내 개봉된다. 화가 김점선씨가 프리다 칼로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프리다 칼로/헤이든 헤레라 지음 김정아 옮김/555쪽 1만5000원 민음사

돌아선 애인을 다시 꼬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아름다운 자화상을 그린다. 그 그림을 보고 다시 매혹되어 돌아오라고…. 프리다 칼로는 이렇게 절실하게 그림을 그렸다. 부드러운 담비 털로 된 붓으로 병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자. 그 여자는 이렇게 200점에 달하는 그림을 그리고 50세를 못 살고 죽었다. 그 그림들의 대부분이 자화상이다.

물질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중력이다. 지구 가운데로 잡아당기는 힘이다. 그로 인해서 지구 껍데기에 조개껍질처럼 달라 붙어있는 고층건물들이 견뎌내는 것이다. 인간을 지배하는 힘은 자기애다. 자신을 사랑하는 본능적인 힘이다. 평생을 봉사행위로 보내는 사람마저도 그것은 자기애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그런 자기애를 시각적으로 적나라하게 풀어낸 대표적인 사람이 프리다 칼로다.

기이하다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서 시원한 해방감을 느낀다. 언젠가 비밀스럽게 품은 적이 있었던 끔찍한 생각들이 이 여자의 그림을 통해 다시 확인되면서, 동시에 거기서 놓여나는 것이다. 무의식을 지배하던 숨겨진, 억눌린 슬픔들이 그의 그림을 통해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풀어지는 것이다. 세상은 어디나 똑 같다. 세월이 흘러도 바람둥이 배우자 때문에 고민하는 심정은 똑 같다. 변심한 애인으로 인해 안절부절못하는 맘도 멕시코든 한국이든 똑같은 것이다. 거의 100년 전에 태어난 이 여자가, 이렇게 지금의 우리와 감각적으로 일치되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프리다 칼로가 자신에게 거짓 없이 솔직했던 것이 그 핵심적 원인일 것이다. 솔직하면 통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어느 문화권이든 어느 계층이든,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솔직한 것이 전부다. 요사떨지 않고 솔직한 것, 자신을 직시하면서, 그림으로 그려서 표현한 것, 그리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스스로 치유하면서 인생을 살아낸 것이다. 이것이 세월을 뛰어넘고 공간을 건너뛰어 우리를 살아있는 프리다 칼로에게로 데려가는 힘이다. 공감케 하는 힘이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고 그래서 다리를 절고, 커서 교통사고 당해서 서른다섯 번이나 수술을 해대면서 고통 속에서 살아간 여자. 그러면서도 죽는 날까지 장엄하고 화려하고 꼿꼿한 자세를 잃지 않은 여자. 여왕처럼 고고한 자세로 쌍욕을 거침없이 내뱉던 여자. 언제나 행복하고 화려하고 쾌활한 겉모습을 유지하면서 강인한 풍모를 보여주던 여자. 구질구질한 슬픔을 결코 드러내거나 인정하지 않던 여자. 어디서든 신화적인 환상을 창조해내던 여자. 이런 자세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본다. 우리의 이상을 보는 것이다. 우리가 되고 싶은 형상을 거기서 읽는 것이다.

환상이되 환상만이 아닌 극심한 고통, 누구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고통, 공인된 고통을 평생에 걸쳐 겪으면서도…, 그럼에도 누그러지지 않는 독한 자기애. 포기하지 않는 질긴 성취욕…. 슬프면 슬픈 색깔로 장엄하게, 아프면 아픔 자체로 화려하게 환상을 만들어간 여자. 현실을 핑계대면서 비굴해지려는 인간들에게 독침을 찌르는 여자. 그 무엇이 우리를 장엄치 못하게 하는가? 저주 같은 불행을 받으면서도 자기 길을 화려하게 간 이 사람을 보라!

김점선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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