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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31일 1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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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축지의 축지법=사기꾼 마축지(이문식)는 채옥(하지원)의 짐 보따리를 훔쳐 마치 정지된 듯한 군중 사이를 쏜살같이 헤쳐 나간다. 사용된 기술은 축지법. 이는 신선술(神仙術)에 나오는 신비 사상의 일종이나 검증되진 않았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떨어진 공간과 공간을 이어 붙여 물리적 거리감을 줄인다는 원리. 역사적으론 매우 빠른 속도로 걷는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들은 뒤꿈치를 내딛은 뒤 앞꿈치가 땅에 닿는 일반적 걸음에서 한 단계를 생략, 앞꿈치만으로 걷는 테크닉을 쓴다. 앞꿈치에 몸무게를 분산시키려면 땅바닥을 스펀지처럼 가볍게 밟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발을 손처럼 사용하는’ 법을 훈련한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축지법을 쓰는 마축지가 황급히 내빼는 생쥐 같은 족속으로만 치부된 느낌이 있다.
▽채옥의 가는 검(劍)=긴 칼은 움직일 방향을 예고하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고수들의 칼은 대체로 작고 가는데, 허리춤에 차는 칼(요도·腰刀)을 선호한다. 고수들은 칼을 앞으로 겨누지 않고 칼끝이 땅을 향하도록 거꾸로 잡는데, 이를 ‘배검(背劍·칼을 거꾸로 쥠)’이라 한다. 칼끝을 보지 못하는 상대는 칼의 동선을 예측하지 못한다. ‘배검’은 테니스로 치면 백핸드. 역모 세력인 장성백(김민준)이 칼을 뽑아들 땐 칼끝이 앞을 향하고 있지만 칼집에 넣을 때는 어느덧 거꾸로 쥐고 있는 것도 ‘배검’ 테크닉을 혼용한다는 반증. 그러나 드라마에서 사복경찰인 채옥이 칼을 지니고 다닌다는 설정은 부적절하다. 조선시대 포교들은 쌍절곤(雙節棍·두 개의 짧은 봉을 부드럽고 강한 끈으로 연결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과 비슷한 ‘쇠좆매’라는 휴대용 무기를 품고 다녔다. 이 무기는 수소의 생식기를 말려 만든 것으로 정수리를 후려치는데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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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 종사관과 채옥의 빗속 검 승부=고수들의 무협 대결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다. 고수들은 일합을 겨루는 동시에 서로의 기를 통해 극한의 ‘성관계’를 맺는다(원작 만화 참조). 최고의 무술은 섹스와 상통한다. 쿵푸의 기법인 ‘용번(龍번·용이 서로 똬리를 틈)’과 ‘선부(蟬附·매미처럼 붙음)’도 결국 성관계 체위라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도 황보 종사관과 채옥의 싸움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측면이 있음에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역설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서로 칼날을 부딪치며 “나는 너에게 무엇이더냐”(종사관) “제가 모시는 종사관 나리십니다”(채옥) “그것뿐이냐. 그것뿐이더냐”(종사관)하며 나누는 대화에서 보듯 종사관과 채옥은 격렬한 애증의 감정을 칼날에 투영하고 있다.
▽하늘과 수면 위를 걷는 공중부양=허공을 걷는 게 아니라 허공까지 올라가는 게 문제다. 일단 뜨기만 하면 착지 시간은 조절할 수 있다. 스카이다이버가 낙하 자세를 바꾸며 땅에 닿는 시간을 조절하는 것과 같은 원리. 일정 높이까지 오르는 양력(揚力)만 얻으면, 그 다음은 켜켜이 쌓인 공기층을 밟으며 체공한다. 공기를 디딜 수 있다면 표면장력을 갖춘 수면 위를 걷는 것은 더 수월하다. 그러나 드라마는 허공을 가르는 장면만 강조할 뿐 하늘로 솟구치는 에너제틱한 이륙 장면은 표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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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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