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 묘비에 심훈 祝詩 새긴다

  • 입력 2003년 2월 11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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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의 첩보(捷報)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이겼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 듯 찢어질 듯. 침울한 어둠 속에 짓눌렸던 고토(故土)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炬火)를 켜든 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고 손기정옹의 묘비에 우승 당시 ‘상록수’의 작가 심훈이 감격에 겨워 쓴 즉흥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가 새겨진다.

손옹의 장남 정인씨(60)와 장녀 문영씨(62) 등 유족은 11일 “4월 중 아버님 묘지에 세울 비석에 심훈의 시를 새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영씨는 “아버님께서는 생전에 그 시를 아주 좋아해 틈나는 대로 읊으며 과거를 회상하곤 하셨다”고 말했다.

유족이 심훈의 시를 손옹의 묘비에 새기기로 한 것은 지난해 12월. 그러나 비문이 길어 새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 겨울에는 공사가 어려워 4월 중에나 건립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석비엔 손옹의 주요 경력, 훈장, 가족관계 등도 새겨진다.

‘베를린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남승룡 양군에게’란 부제가 붙은 이 시는 마라톤 영웅의 외로운 질주를 찬양하고 우승의 감격을 통해 억눌린 민족의 아픔을 잘 표현해 냈다.

지난해 11월 15일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손옹은 대전국립묘지 국가유공자묘역에 안장됐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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