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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2월 6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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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금이 폭증하자 '2000원이면 1주일이 즐거운 유일한 서민 게임'에서 '서민의 주머니를 터는 한탕주의의 산물'까지 로또에 대한 평가가 극단으로 엇갈리고 있다. 로또 열풍, 어디로 어떻게 불 것인가.
△10여년 전부터 각종 복권 수천 장을 사 모아온 역술가 주유진씨(40) △인터넷 로또 복권 관련 사이트 2곳에 회원등록하고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회사원 김태성씨(39·CJ주식회사 홍보팀 과장) △모든 복권을 단 한번도 산 적이 없는 주부 김경란씨(36·프리랜서 큐레이터) △주변에 로또 4등 당첨자가 있는 본보 위크엔드팀 이진영 기자(35)가 4일 만나 '로또방담'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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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과거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어떤 남편이 아내에게 "빨리 짐싸라"고 해서 아내는 '함께 도망가자'는 뜻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갈라 서자'는 뜻이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언뜻 들은 것 같아요. 아휴, 당첨금이 뭔지….
김태성〓금액이 문제가 아니죠. 복권은 레저의 일환이죠. 각종 복권에 3년 넘게 투자했지만 지금까지 최대 당첨액이 겨우 1000원이었어요. 보통 금요일에 주택복권, 슈퍼더블복권, 로또복권을 인터넷으로 구입하죠. 월요일부터 사놓으면 한 주 내내 궁금하잖아요? 금요일에 사면 최단 기간에 결판나죠. 일찌감치 사놓고 한 주를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난 아니죠. 지금까지의 인생 여정 자체가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무조건 잘 안 돼 왔거든요. 무조건 단숨에 해치워야지…. 아아, 로또 당첨금에 대한 행복한 상상이란….
일동〓행복한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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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성〓‘10억원 당첨되면 세금 제하고 7억8000만원 정도 들어온다. 유일한 형제인 월급쟁이 형에게 2억원 주고. 더 달라고 하면 일을 내 버린다. 어머님에게도 살짝 3000만원 쥐어드린다. 필요하시다고 하면 더 드린다. 하지만 어차피 한푼도 쓰실 양반이 아니다. 오히려 그 돈 모아놨다가 내가 헤프게 쓰면 도와줄 분이다. 처가에도 5000만원 드린다. 당첨금은 4억원쯤이었다고 오리발 내민다. 친구들한테는 룸살롱에서 한턱 쏜다. 발렌타인 30년산으로….’ 뭐 이런 상상이죠.
주유진〓아아, 그러니까 1등에 당첨이 안 되지. 계획을 아주 구체적으로 짜놓으면 잘 안 된다니까. 운은 도둑처럼 들어와야 하는 거라니깐. 부지불식간에…. 물론 당첨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지만….
김태성〓알죠, 알아. 로또 당첨 확률이 벼락맞아 사망할 확률(50만분의 1)보다 훨씬 낮다는 거. 그러나 나에게 당첨확률은 50%예요. 당첨이 되든가 아니면 안 되든가. 난 금요일 오후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8’로 깔아버려요. 8, 18, 28, 38…. 8자가 내게 잘 맞는 숫자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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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진〓‘8’을 선택한 건 아주 좋습니다. 중국에서는 ‘8’이 재물을 뜻하니까. 자기만의 의미가 있는 숫자를 택하는 것이 좋죠. 그래도 3개 이상 숫자를 맞히는 것은 대운(大運)이 다가 오지 않는 한 어렵죠.
김태성〓복권을 일일이 사러 다니기 귀찮아 2개의 인터넷 사이트에 2만원 정도씩 예치금을 걸어놓고 매주 자동으로 구입해요. 밤에 화장실 가려고 잠이 갑자기 깨거나 반대로 잠이 무지하게 안 올 때 ‘신의 계시인가보다’고 믿고 순간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마우스를 클릭하죠. 이때 복권을 1만∼1만5000원어치 사죠. 아아, 복권의 맛은 여기에 있어요. 월요일 회사에 출근해 컴퓨터를 켤 때면 심장이 벌렁벌렁 뛰죠. 단 500원짜리라도 당첨이 되면 e메일을 열자마자 ‘당첨되셨습니다’하는 문구가 커다랗게 뜨거든요. 액수는 다시 클릭해 들어가야 알게 되고…. 아아, ‘당첨되셨습니다’. 그 기대와 희열. 알고 보면 최대 당첨액수가 지금껏 1000원이었지만…. 그걸 다시 예치금으로 전환시켜 다음 복권에 대비하죠. 그러면 월 2만∼3만원밖엔 들지 않죠.
이진영〓역술인으로서 복권을 산다는 게 창피하지 않으세요?(웃음)
주유진〓(정색하며) 전혀. 내 운명엔 재물운이 없어요. 복권을 사도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죠. 그래서 주택복권 체육복권 올림픽복권 플러스플러스복권 등 각종 복권을 빠짐 없이 사고도 대부분 맞혀보거나 긁어보지 않았죠. 하루 일진을 감안하여 구입한 것은 열어보기도 하는데, 500원짜리 하나 사면 1000원짜리가 당첨되기도 하고, 연타로 서너 번은 당첨 돼 본전은 건지는 편이죠. 하지만 로또 복권은 꼭 맞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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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왜요?
주유진〓내 자신을 임상실험의 대상으로 내놓는 거라고나 할까요? 꿈자리가 좋고 날과 시(時)가 나에게 좋은 날 삽니다. 몇 개 숫자나 들어맞는지를 체크하죠. 내 실력을 점검하는 거죠. 요즘 ‘로또복권에 되겠느냐’를 묻는 손님들이 너무 많아서….
일동〓손님이요?
주유진〓단 한 장을 사도 1등 운이 있으면 되는 거고 100만원어치를 사도 운이 닿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월 일 별로 문서재물운(文書財物運)이 겹치면 당첨되는 거죠. 설 보너스로 나온 300만원을 몽땅 로또 복권에 투자한 샐러리맨도 있는데 이건 정말 문제죠. 당첨은 운이 깃든 단 한 장에 있는 데 말이죠. 하지만 어디 서민들이 1억∼2억원을 1∼2년에 모을 수 있겠어요? 일종의 탈출구인 셈이죠. 당첨금이 100억원대에 접어드니까 곳곳에서 전화가 폭주해요. “올해 저 복권 됩니까?” “오늘 샀는데 될까요?” 심지어 “행운의 숫자를 골라달라”며 전화하는 친구도 있었죠. 내가 그랬죠. “인간아, 그거 알면 내가 했지.”
김경란〓나는 복권을 사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원래 일확천금이나 행운을 믿지 않는 성격이죠. 하지만 지난 주에는 사보려고 했어요. 점집에 갔더니 “36세에 큰 돈을 벌 것”이라고 해, 설 직전에 마지막 운을 걸어보려고 했죠. 그러나 설 차례상 준비하다 기회를 놓쳤죠. 설 연휴에 고속도로를 지나는데 전광판마다 ‘억’ ‘억’하는 글자가 눈에 크게 들어왔어요. 주식도 안 하는 성격이지만, 요즘엔 주변 친구나 친척들 모두 첫 인사 자체를 로또복권 얘기로 하죠. 얼마 전 형부도 전화를 걸어와 “처제도 복권 한번 사보라”더군요. 여기 오기 전 아이가 다니는 리듬체조 학원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만난 학부모 10명도 전부 복권 얘기뿐이더라고요. 다 평범한 아줌마들인데…. 이번 주엔 꼭 살 거예요.
주유진〓(김경란씨에게 생년월일을 묻더니) 하하. 김경란씨는 올해 7, 8월(음력)에 문서재물운이 있을 사주예요.
김경란〓(화들짝 웃으며) 정말이요?
주유진〓또 35세부터 60세까지는 재물운이 강하게 들어있죠. 복권은 ‘정법’돈이 아니라 ‘편법’돈이죠. 횡재수에 속해요. 이런 횡재수와 재물운이 겹치는 사람들의 당첨확률이 높다고 보죠.
김경란〓당첨이 되지 않더라도 크게 아쉽지 않아요. 당첨되는 사람에게 1만원어치(로또복권 1장으로 최대 시도할 수 있는 5회분 대금을 의미) 운을 보태준다고 생각하면 맘이 편하죠. 로또복권 기금의 32%인가가 공익사업으로 환원된다고 하니 더더욱 그렇죠. 하지만 100만원어치씩 산다는 얘기를 들으면 한심하기도 하고 화도 나요. 살림에 보탰으면 아내를 훨씬 더 행복하게 했을 돈을 벼락맞을 확률보다 더 작은 기회를 잡기 위해 희생시킨다는 게 우습잖아요?
김태성〓절대 부인에게 말하지 않을 겁니다. 100만원어치 샀다는 걸.
김경란〓일확천금을 바라는 마음도 알아요. 로또복권 광고카피가 ‘인생역전’이던데. 거꾸로 보자면, 복권이 아니면 인생이 뒤집어지는 게 불가능한 세상이란 뜻이잖아요?
주유진〓아아, 앞으로 1등 당첨 액수를 제한한다는 발상도 사회주의적이에요. 균등분배만 주장하는…. 아니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인가? 취지는 이해하지만 엄청난 재물운이 있는 사람에게 돌아갈 복을 제한한다는 것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모순이죠. 어차피 1등이 다 갖는 거 아녜요?
이진영〓나는 행운에 ‘총량’이 있다고 봐요. 행운의 총량이 사람마다 정해져 있어 한곳에서 복을 얻으면 다른 방면에서 그만큼 복을 상실하게 되는…. 로또로 얻은 행운이 다른 소중한 행운을 앗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아들이 돌상에서 돈 대신 연필을 잡는 걸 보고 기분 좋았어요. 연필을 잡으면 뭔가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죠. 하지만 돈이야 써버리면 그만 아닌가요?
주유진〓아니죠. 사람마다 복의 ‘그릇’이 다르죠. 어떤 사람은 몇백억원을 꿀꺽해도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하지만 어떤 사람은 기껏 수백만원에도 불안에 떨죠. 복권에 당첨되는 건 행운이지만, 그 다음 불운이 따르기도 하죠. 복권 1등에 당첨된 사람을 알고 있는데 늘 “이민 가고 싶다”고 되뇌었어요. 당첨되자마자 어떻게들 알았는지 주위에서 엄청나게 전화를 해대더라고 하더군요. 친구나 친척에게서 오는 전화는 그나마 다행이고, 생전 모르는 사람들도 전화해서 “좋은 일에 기부해라” “너 어디어디 살지? 밤길 조심해” “나 조폭인데, 잘 살아봐” 하더래요. 끔찍하죠.
이진영〓솔직히 전 당첨될까봐 로또복권을 사지 못했어요. 당첨되면 삶이 너무 불안해질까봐.
주유진〓자기 그릇에 맞지 않는 큰돈을 받고 비명횡사하는 사람도 있죠. 너무 큰 운이 들어오니까 탈이 나는 거죠. 주택은행에서 발간된 ‘복권백서’를 보니 당첨자 100명 중 70명이 당첨금을 날렸다고 하더군요.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가…. 고스란히 지켰거나 불린 사람들은 대부분 부동산에 투자했던 사람들이었죠. 난 700억원에 당첨되면 한번에 없앨 좋은 방법을 알고 있어요.
일동〓그게 뭐죠?
주유진〓강남 목 좋은 자리에 큰 빌딩하나 대번에 사는 거죠. 거기서 월세만 받아도 평생 살 수 있는 거 아녜요? 어떻게 700억원을 써야 할지 걱정 안 해도 되고.
김태성〓700억원을 편안하게 ‘돌리는’ 방법도 생각해 봤어요. ‘내가 당첨자’라며 나서서 매스컴에 노출되면 아무래도 위험하잖아요? 대신 당첨이 확정된 복권을 자산 관리하는 회사에 파는 거죠. 복권도 유가증권이니까. 이때 당첨금 수령시 떼는 세금 22%(약 7억7000만원)만큼을 제한 값에 그대로 팔죠. 그러면 저는 신분 노출되지 않고 당첨금은 챙기죠. 또 자산관리 회사는 자식에게 상속하고자 하는 재산가에게 약간의 프리미엄을 받고 당첨 복권을 팔죠. 그리고 나서 그 재산가는 자식에게 그 복권을 건네주며 ‘당첨금을 타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50% 가까운 상속세를 내지 않고 수백억원을 상속할 수 있게 되죠. 하하. 어디서 들으니 실제 이런 일에 나선 업체들도 있다고 하던데….
주유진=허허, 기발한 수법이군요.
김태성〓로또가 사행심을 자극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그건 사행심의 정체를 모르고 하는 얘깁니다. 더한 놀이가 숱하게 많죠. 예를 들어 경마. 얼마나 큰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요. 어느 말이 이길지 머리도 많이 써야 하고 직접 경마장에도 가야하고…. 슬롯머신이나 포커도 마찬가지죠. 시간 투자해야 하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하지만 로또복권은 (인터넷으로) 사는 데 5초면 되죠. 난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은 것은 안 해요. 주식투자만 해도 하루 종일 근무시간에 모니터 보고 있지만, 로또복권은 한번 사면 운명적 기다림 외엔 아무 것도 없는 것 아녜요?
주유진〓복권을 ‘산다’는 행위도 사실 운명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행위죠. 지난번에 인터넷으로 당첨 숫자는 다 맞혀놓고 실제 구입을 하지 않아서 100억원이 넘는 돈을 놓친 사람도 있잖아요? 의외로 재수 없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죠. 아마 한밤 중에도 나가서 찬물로 세수할 걸요? 숫자 맞히는 것만이 운이 아니라 어떤 행(行)을 하느냐 하는 것도 운이죠. 과거 탤런트 손지창씨 장모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잭폿을 터뜨렸을 때 한 TV프로그램에서 같은 생년월일시를 가진 사람을 섭외해 ‘왜 이 사람은 운이 없었느냐’고 문제 제기했는데요. 정말 말도 안 되죠. 사주가 같다고 다 같은 운을 갖나요? 그 날 그 시간에 장모는 슬롯머신을 당겼지만, 다른 한 사람은 설거지를 하고 있었던 거죠. 어떤 행(行)을 행하느냐가 큰 변수라니까요.
김태성〓물론 다음 주에 엄청나게 준비해야 하는 업무보고나 프리젠테이션이 있을 때 ‘요거(로또복권)되면 (업무보고) 안 해도 되는데…’하는 얄팍한 생각은 들지만…. 복권은 월급쟁이들에게 월 2만∼3만원으로 큰 즐거움을 주는 행복의 도구죠. 직장생활에도 아무 문제가 없고.
이진영〓1등에 당첨돼 400억원 이상이 생기면 회사 그만 둘 건가요?
김태성〓아니오. 400억원 갖고 직장생활하면 사장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직함이 높아질수록 윗사람 눈치보고 신변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들 모습을 10년 넘게 보아오다 보니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고…. 임원이라고 해봐야 ‘임시직원’ 아닌가요? 언제라도 회사가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하지만 400억원 있으면 ‘잘려도’ 마음 든든하니 소신껏 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남자들은 직함에 대한 욕구가 있지 않습니까? 하다 못해 자동차 접촉사고라도 내면 명함을 내밀 때랑 대충 말로 때울 때는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회사라는 울타리는 갖고 있어야죠.
일동〓하긴 그렇네요.
김태성〓하지만 부하직원들에게 금요일이면 “내가 월요일에 출근 안 하면 당첨된 줄 알아라. 난 홍콩 페닌슐라 호텔에 있겠다. 사표는 e메일로 보내겠다. 한 3개월 앞으로의 거취를 구상하고 인생을 설계한 뒤 귀국하겠다. 내 퇴직금은 너희들 술값으로 써라”라고 말해요. 배설의 즐거움만 있나요? ‘발설의 즐거움’이라는 게 있잖아요? 될지 안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일단 큰소리치고 보는 거죠. 이 정도를 사행심이라고 표현하기에는…. 한 달 담뱃값이 5만∼6만원이에요. 전 복권을 사는데 한 달에 2만∼3만원을 쓰죠. 이걸로 허세 한 번 부릴 수 있고 삶에 잔잔한 윤기도 흐르잖아요? 사실 전 700억원도 좋지만 늘 ‘10억원’ 정도를 바라봅니다. 난 ‘잔잔한’ 게 맞는 거 같아요.
주유진〓근데 왜 홍콩이죠?
김태성〓가까우면서도 날 찾기 어려운 곳이잖아요.
주유진〓대단히 미안합니다만, 김 과장님은 관상으로 볼 때 재물운보단 수명(壽命)운이 훨씬 강해요. 벽에 ×칠 하지 않고 건강하게 90살은 거뜬히 넘기며 장수할 운명이죠. 재물로 볼 때 인생에 ‘대박’은 없어요. 10억원 정도를 마음 속에 책정한 것도 썩 현명한 선택이죠. 재물운에 관한 그릇이 작아서 700억원에 당첨돼 홍콩에 간다고 해도 삼합패(홍콩의 폭력조직)에 다 털릴 걸요.(웃음)
김경란〓난 복권에 당첨돼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어요. 복권을 계속 사지도 않을 거고요. 다만 100억원 정도 당첨되면 한 달에 1억원씩 출자해서 무가지를 낸 뒤 단행본으로 출간해서 배고픈 만화작가들을 돕자는 생각은 해봤어요. 주위에 절친한 만화작가가 고군분투 중이거든요.
김태성〓로또복권 때문에 근로의욕이 저하된다는 말은 과장이죠. 잠깐 담배를 피우거나 점심식사할 때 화제로 삼는 정도죠. 뭐 큰 ‘작당모의’를 하는 것도 아니고 “7 대 3으로 나누자” “너 얼마 떼어줄게” 식의 뜬구름 잡는 얘기죠. 당첨된 사람은 주위에 한 명도 없어요. 안되니까 쉽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실제로 되면 이렇게 오순도순 얘기하겠어요? 잃었던 공동체 의식도 북돋고 ‘발설의 즐거움’에도 동참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아는 사람이 될까봐 사실 두렵기도 해요.
김경란〓왜요? 나는 이왕이면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죠. 맛있는 거라도 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또 그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저 자신도 큰 노력을 기울이게 될 테니까요.
주유진〓당첨되는 사람들은 보통 어려운 사람들이 많잖아요? 부자가 당첨되면 사람들이 화가 날텐데…. 그런 걸 보면 복권은 인생의 보너스라고 생각해요. 복권 당첨에 떨어져도 불우이웃돕기 성금 냈다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이진영〓어려서부터 ‘정직하게 살고 바르게 모으자’는 교육이랄까 주의(主義)에 세뇌 당해서인지 몰라도 난 난데없는 불로소득을 받으면 겁이 덜컥 날 것 같아요.
김태성〓한 번은 간밤에 돼지꿈을 꾸고서 ‘이게 기회다’ 싶어 종로 지하도, 시청앞 덕수궁, 광화문역 등지의 ‘잘 뽑히는’ 곳으로 유명한 복권판매소를 돌아가면서 샀어요. 근데 말짱 헛것이더라고요.
일동〓그럼 돼지꿈은 뭐였죠?
김태성〓난 유니콘이 나타나는 꿈도 꿔봤어요. 아스라이 저 멀리서 기러기 떼가 날아오기에 자세히 봤더니 날개와 뿔이 달린 유니콘떼인 거예요. 나에게 마구 달려들었죠. 그 날 복권을 샀더니 복권은 안 되고 딸이 생기더라고요. 태몽 갖고 복권 샀다고 어머니한테 엄청나게 혼났어요.
이진영〓나는 좋은 꿈을 꾸더라도 그 행운을 복권을 통해 받고 싶지는 않아요.
주유진〓길몽을 꾸더라도 그 꿈을 간직하고 있으면 3일 또는 3주 또는 3년 안에 행운이 찾아온다고들 하죠. 하지만 일단 복권을 사 버리면 다른 행운은 사라지는 거죠.
이진영〓그럼 ‘행운 총량설’도 맞는 거군요?
김경란〓당첨 안 돼도 내가 낸 돈이 공정하게 좋은 곳에 쓰인다고 생각하면 화병이 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김태성〓로또복권은 자신이 직접 번호를 적어 넣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게임방식과 거대한 당첨금 때문에 화제가 되는 것뿐이지, 근본은 다른 복권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서민들이 가질 수 있는 ‘잔잔한 꿈’을 실현시켜줄 수 있고 복권 업계의 균형적 발전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죠. 그냥 조용히 복권 사고 맞춰보고 실망하도록, 언론에서 좀 조용히 있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제발 저로 하여금 ‘잔잔하게’ 살도록 내버려 뒀으면 좋겠어요.
1시간반에 걸친 만남이 끝난 뒤 본사는 패널로 참가한 세 명에게 소정의 대담료를 지급했다. 이날 밤 대담료로 김경란 주부는 서울 종로구 종로1가 교보문고에 들러 남극탐험에 실패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않고 637일간 사투를 벌여 끝내 살아 돌아온 새클턴경의 남극탐험대가 남긴 글과 사진을 정리한 ‘인듀어런스’라는 책을 구입해 남편과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일부는 로또복권을 샀다. 김태성 과장은 DVD 2장과 아내를 위해 치즈케이크를 샀고 “한 달 (복권) 투자액 한도를 지키겠다”며 로또복권은 사지 않았다. 역술인 주유진씨는 “어차피 이번 달과 다음 달 재물운이 좋지 않다”며 모범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정리〓이승재기자 sjda@donga.com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로또 Q&A▼
―로또(lotto)라는 단어의 뜻은.
“이탈리아어로 ‘제비뽑기’라는 말이다. 복권의 시초는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제가 연회에 참석한 귀족들에게 참가비를 받고 내준 영수증을 추첨해 경품을 주었다. 복권구매자가 번호를 지정해 온라인으로 정보를 보내는 현대적 방식의 로또는 71년 6월 미국 뉴저지주에서 판매한 ‘데일리게임’이 효시다.”
―당첨금은 총 판매액의 몇 %인가.
“판매액 가운데 30%는 로또 발행 주체인 건설교통부 행정자치부 등 7개 부처가 공공 기금 조성 명목으로 가져간다. 또 판매액의 20%는 시스템 사업자, 운영 사업자 등의 운영비와 판매인 수수료 등으로 지급된다. 당첨금은 이를 제외한 금액, 즉 판매액의 50%다.”

―당첨금 배분은 어떤 식으로….
“5등 당첨자의 숫자가 각 등수의 당첨금 규모를 결정한다. 5등 당첨자에게 우선 1만원씩 지급한 다음 나머지 돈으로 1∼4등에게 지급하기 때문이다. 만약 전체 당첨금이 100억원인데 5등 당첨자가 40만명이 나온다면 5등 당첨금 40억원을 제외한 60억원이 1∼4등에게 돌아간다. 1등은 남은 당첨금의 60%, 2등 10%, 3등 10%, 4등 20%를 가져간다.”
―추첨기는 어느 나라 제품인가.
“1933년부터 복권 추첨기를 개발하고 있는 미국 스마트플레이 인터내셔널사의 제품인 ‘할로겐’이다. 공은 고무 재질이다.”
―온라인 판매 시스템이 진행되는 과정은.
“판매소에서 대금을 지급하고 단말기에 카드를 입력하면 고객이 선택한 번호는 실시간으로 중앙컴퓨터에 전송된다. 이 정보를 통해 구매자가 어느 지역에서 어떤 단말기로 구입했는지, 1등이 어디서 팔렸는지 알 수 있다.”
―로또를 판매하는 나라는.
“60개국에서 120여종의 로또가 발행되고 있다. 대부분 30∼50개의 번호 가운데 5∼7개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해외의 ‘대박’ 사례는.
“미국의 조지아주 일리노이주 뉴욕주 등이 연합해 발행하는 ‘메가 밀리언즈’가 지난해 4월 미국 복권 사상 최고액인 3억2500만달러(약 3900억원)를 터뜨렸다. 3개주에서 각 1명씩 당첨자가 나와 당첨금을 나눠 가졌다. 1인 최고 당첨금액은 미국의 22개주가 연합해 발행하는 ‘파워볼’이 2000년 12월 3억1490만달러(약 3709억원)를 기록한 게 최고다.”
―‘대박’숫자를 고르는 비법 있나.
“없다. 외국에는 각종 가이드북이나 관련 제품들이 있다. 미국의 로또 잡지인 ‘로또 월드’는 알파벳 암호 대입법을 소개하고 있다. A에서 Z까지 1부터 순서를 매긴 다음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를 이 원칙에 따라 숫자로 바꾸는 것이다. 일본 대만에서는 버튼만 누르면 로또 숫자를 생성해주는 로또 전문 용품이 판매되고 있다.”
―과거 당첨 빈도가 높았던 숫자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방식에는 맹점이 있다. 인기가 있는 만큼 여러 명이 똑같은 숫자를 고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월 11일 6회차 추첨 때 7-13-19-25-31-37의 조합을 선택한 사람이 2만4565명이었다. 당시 1등 당첨금이 65억선이었는데 이 조합이 1등이 됐다면, 각자 26만원 밖에 가져가지 못했다.”1995년 10월 16일 독일 로또 추첨에서 나타난 인기 번호를 보면 1―9―17―25―33―41의 조합을 선택한 사람이 무려 7871명이었다.”
(도움말:KLS(코리아로터리서비스)의 자회사인 미래사회전략연구소 최종은 과장)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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