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위예술제, 너희가 ‘여자’를 아느냐?

  • 입력 2002년 12월 30일 17시 14분


일본작가 사카모토 나오코의 행위예술./사진제공 서울국제행위예술제
일본작가 사카모토 나오코의 행위예술./사진제공 서울국제행위예술제
27일 오후 4시 서울 인사동 거리. 매서운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20대 여성 한 명이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걷고 있었다. 부케 뒤로 잡아 쥔 라디오에서는 웨딩마치가 흘러 나왔다. 곱게 화장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띤 이 여자는 상점에 들어가 인사를 하기도 하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길거리에 누워 치마를 훌러덩 뒤집어 머리까지 덮어쓴다. 게다가 속치마는 검은색이었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27일과 28일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 펼쳐진 ‘제2회 2002 서울 국제 행위 예술제’는 이렇게 막을 올렸다. 웨딩드레스 퍼포먼스의 주인공은 일본 작가 사카모토 나오코. 작가는 여자를 상징하는 웨딩드레스가 일상의 표현이라면 치마를 걷어 올리는 행위는 일탈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또 흑과 백의 충돌을 통해 여자의 욕망과 이성의 충돌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행위예술’로 번역되는 퍼포먼스는 20세기초 전위적인 서구미술에서 태어난 뒤 100여년간 춤, 연극, 음악 등 전 예술분야로 퍼져 나갔다. 1960년대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즉흥성과 해프닝 성격이 강했으나 이후 이야기와 논리를 갖춘 이벤트로 발전한 뒤 90년대 들어서는 다양한 시각적 양식으로 변모해 왔다.

국내 행위예술인들의 무대인 서울 국제 행위 예술제는 2년 전 1회 때와 같이 인사동 거리 전체를 무대로 펼쳤다. ‘여성의 감수성’이라는 주제를 내 건 이번 행사에는 일본의 행위예술가 5명도 함께 참여해 한국과 일본의 여성 행위예술가 12명이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의 억압과 성적 정체성을 표현했다.

천장에서 바닥까지 드리워진 비닐 뒤에서 붉은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토마토를 짓이기듯 먹은 다음 남은 것들을 발로 뭉갠 뒤 구슬픈 곡조의 아코디언을 연주한 소니아씨는 ‘붉은 바퀴’라 이름 붙인 행위 예술을 통해 여성의 내면적 억눌림을 표현했다. 또 채송화씨는 인어복장을 하고 어항속 인어로 여인의 삶을 표현했으며 일본작가 준코 이가는 향, 메트로놈, 베이비파우더 같은 소품을 바닥에 뿌리면서 허우적대는 몸짓을 통해 인간과 인간사이의 소통의 부재를 표현했다.

이번 행사를 맡은 예술감독 윤진섭씨(호남대 교수)는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몸에 대한 담론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도 활발해지고 있다”며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을 모두 관객과 참여자로 만드는 행위예술을 통해 한일 여성작가들의 감수성의 단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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