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철학회’ 출범… 이성의 눈으로 ‘학문권력’ 다시본다

  • 입력 2002년 12월 16일 17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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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철학회에 참가한 학자들은 학계의 금기가 된 주제에 대한 비판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연구방법을 모색해 가자고 입을 모았다./김형찬기자
비판철학회에 참가한 학자들은 학계의 금기가 된 주제에 대한 비판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연구방법을 모색해 가자고 입을 모았다./김형찬기자
철학계에 본격 ‘비판’을 제기하겠다는 취지로 출범한 비판철학회(회장 양재혁 성균관대 교수)가 14일 성균관대에서 ‘박종홍 철학 비판’을 주제로 창립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철학자 박종홍(朴鍾鴻·1903∼1976)은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이화여전, 경성제대, 서울대 교수, 학술원 회원을 역임하며 한국 철학계를 대표해온 학자. 박정희 정권 시절인 70년대 초 대통령 교육문화담당 특별보좌관을 맡으면서 군부 독재에 협력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비판철학회는 5∼6년 전부터 독일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 온 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운영해 온 모임이 모태가 됐으나, 실제로 이 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온 ‘대학강사’들은 이번 창립기념 학술대회에서 ‘감히’ 발표자나 토론자로 나서지 못했다.

박 교수의 제자들이 전국 각 대학에 널리 포진해 있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비판은 곧 한국 학계에서 자리잡는 것에 대한 ‘포기’를 뜻하기 때문이다. 양 회장은 “학자의 기본은 데모나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해서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폭로’하는 것임에도 기존 학계의 권위와 편견이 무서워 자신의 견해를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며 “비판철학회의 결성은 이러한 한국 학계의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학술회의에선 박종홍 교수의 철학과 행적에 대해 다양한 비판이 제기됐다. 양 회장은 기조발제 ‘박종홍과 그의 황국(皇國)철학’에서 “박 교수가 일관되게 주장한 ‘중(中)’의 논리는 결국 ‘모두가 하나’라는 논리로 상반된 견해를 가진 다양한 경향들을 억압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과학적 분석 없이 ‘불변의 전통’을 진리로 고집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를 거쳐 한국 전쟁과 박정희 정권까지 중요한 정치 집단들의 차이점을 포착해 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홍윤기 교수(동국대·서양철학)는 발표문 ‘파시즘 문서로서의 국민교육헌장’에서 “박 교수는 국가권력의 부정적 작동 가능성에 대해서 사실상 눈을 감고 있었다”며 “박 교수가 작성한 ‘국민교육헌장’은 오랫동안 꿈꿔온 자신의 국민국가 건설 철학의 실천적 결실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열암 박종홍의 초기 철학 사상’을 발표한 김재현 교수(경남대 교수·서양철학)는 “우리의 전통 철학과 서양 철학을 종합하려 시도했던 박 교수의 철학에 대한 연구는 한국현대철학의 역사적 연구뿐만 아니라 한국 지성사의 이해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작업”이라며 그에 대한 비판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철학계에서 그 동안 박 교수에 대해 산발적인 비판이 있었으나 그 후학들은 적극적인 대응을 해 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학술대회는 이전과 달리 박 교수의 ‘철학과 실천’ 전반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이어서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이 나올지 학계에서 주목하고 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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