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방송]채널 디바이드, 남녀·소득·취향따라 차별 뚜렷

  • 입력 2002년 11월 7일 16시 54분



《‘채널 디바이드(Channel Devide).’ 시청자의 성별, 소득수준, 사회문화적 차이와 성향에 따라 TV채널을 달리 선택하는 현상이다. 이 채널 디바이드가 우리 사회에서도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위크엔드는 하루 1시간 이상씩 특정 채널의 방송을 시청하는 7명을 대상으로 각종 매체 이용 방식, TV와 라이프스타일의 상관관계에 대해 심층 인터뷰했다.》

●트렌드족과 HBO ‘섹스 앤드 시티’

의류수입업체인 선익인터내셔널㈜의 머천다이저 표반이씨(27)는 매주 토요일 밤 12시 인기드라마 ‘섹스 앤드 시티’가 방송되는 HBO에 채널을 고정시킨다.표씨는 업무차 지난해 미국 뉴욕에 3개월간 머물면서 이 드라마의 매력에 푹 빠졌다.

발렌티노 오트 쿠튀르의 핫핑크 새틴 파우치, 꽃문양이 프린트된 빈티지풍의 구치 숄더백, 각선미를 돋보이게 하는 15㎝ 높이 굽의 마놀로 블라닉 샌들…. 30대 전문직 여성들의 성(性)과 사랑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거니와 뉴욕의 최신 패션을 따라잡을 수 있어 즐겨 시청한다.TV뿐만 아니라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최신 유행을 배울 수 있다. 표씨는 스타일닷컴(style.com)과 인터넷음악방송인 스톤라디오닷컴(stoneradio.com)에 자주 접속한다.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의 옷은 백화점의 DKNY, 데얼스, 망고 매장에서 사고 트렌디한 옷은 동대문 제일평화시장에서 구입한다. 물론 ‘섹스 앤드 시티’에서 익힌 색감은 쇼핑에 크게 도움이 된다. 1주일에 한두번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나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에 들러 영화를 관람하고 보그, 엘르, 바자 등 거의 모든 패션잡지를 정기구독한다.

최근 SBS 월화드라마 ‘야인시대’의 시청률이 50%대를 넘어섰다고 하지만 두번 시청한 후로 보지 않는다. 처음부터 죽 시청하지 않은 데다 폭력장면도 거슬렸다. KBS 2TV의 ‘고독’도 한번 시청했지만 40대 여성이 주인공인 내용이 절실하게 와닿지 않았다. 대신 감우성과 김민선이 출연하는 같은 시간대의 MBC ‘현정아 사랑해’를 꼬박꼬박 본다. 스토리 전개가 경쾌하고 내용이 밝다.

‘섹스 앤드 시티’의 다음카페(cafe.daum.net/sexandcity) 부시솝(부대표) 최성원씨(오감디자인 대리·29)는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층을 영어학습파, 외국유학파, 트렌드추종파 등 세 부류로, 남녀비율은 3 대 7로 파악한다. 남자친구와 섹스 도중 “넌 이것밖에 못하느냐”고 노골적으로 불평하는 드라마 속 여배우의 모습은 20, 30대 여성 시청자들을 대리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는 것.

“‘베벌리힐스 90210’ ‘사인펠트’ ‘프렌즈’ ‘앨리의 사랑만들기’ 등으로 내려온 미국 드라마의 한국 내 인기 계보가 ‘섹스 앤드 시티’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대학시절 한번쯤 외국 연수나 여행을 다녀왔을 법한 지금의 20, 30대는 미국 드라마를 시청한다는 것에 대해 약간의 우월의식이 있거든요.” 최근 인터넷사이트 럭셔리굿(luxurygoods.co.kr)에서 에트로 가방을 구입한 최씨는 HBO채널 이외에 푸드채널, MBC드라마넷을 시청한다. MBC드라마넷에서 방송된 ‘애인’, ‘이브의 모든 것’ 등 ‘옛날 드라마’에는 나름대로의 추억과 멜로가 있다. 일요일에는 MBC 청춘시트콤 ‘논스톱’ 재방송을 시청한다.

●최변호사의 히스토리채널 예찬론

‘김·장·리 법률사무소’의 변호사 최윤상씨(34)는 TV시청시간의 대부분을 히스토리채널에 투자한다. ‘알래스카의 버뮤다 삼각지대’‘대탐험 살윈강’‘일본의 해저 피라미드’‘미국의 대자연’ 등 자연과 인류문화에 대한 흥미진진하고도 방대한 교양을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최근에는 영국소설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토대로 만든 영화 ‘명탐정 셜록 홈즈’도 시청하고 있다.

“밤 10,11시경 퇴근해 지상파TV를 보면 시트콤이나 말장난하는 오락 프로그램 일색입니다. 히스토리채널을 틀면 평소 제 관심영역인 해외문물, 동물, 역사 등에 대한 프로그램을 계속 시청할 수 있어 좋아요.”

하루 1시간 정도 이 채널을 시청하는 최씨는 지상파TV 프로그램 중에는 MBC 현대사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빼놓지 않고 시청했고, 평소에는 MBC ‘시사매거진 2580’, KBS1TV ‘추적 60분’처럼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주로 시청한다.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그가 스포츠채널을 보는 일은 거의 없다. 영화도 좋아하지만 평일 2시간 이상씩 영화채널을 시청하기는 무리다.

최씨는 케이블채널 중에서는 논픽션채널 Q채널과 디스커버리채널을 주로 보고 일본위성방송채널 BS2에서 방송하는 클래식공연도 틈나는 대로 시청한다. 대학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그는 클래식 공연잡지 ‘객석’을 정기구독하고 있다.

금속분말제조업체인 ㈜코바텍 대표 박청식씨(39)는 TV시청시간의 대부분을 히스토리채널에 투자한다. ‘스파르타 제국의 흥망’ ‘다시 보는 성(性)의 역사’ ‘애니멀플래닛 사파리’는 그 어떤 오락프로그램보다 흥미진진했다. 고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박씨는 “상식을 넓힐 수 있어서” 하루 1시간∼1시간반 이 채널에 집중한다. 이 밖에도 KBS 1TV ‘역사스페셜’, MBC ‘시사매거진 2580’, SBS골프채널의 ‘도전 7기대회’, KBS 1TV ‘뉴스라인’ 등을 시청한다. 아내와 초등학생 아이들은 거실에서, 박씨는 침실에서 각각 시청한다. 그는 인터넷사이트 중에서는 증권정보 사이트인 싱크풀닷컴(thinkpool.com)을 즐겨 검색한다.

●심야에 골프채널 시청 주말엔 필드로

프리랜서 프로그래머 조남숙씨(31)는 매일 밤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SBS 골프채널을 시청한다.

4년 전 사업하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골프를 시작한 조씨는 핸디캡 18수준 . 근무시간이 자유로운 조씨는 낮시간에는 SBS 골프채널의 인터넷사이트(sbsgolf.com)에 접속해 사이버 골프레슨을 받는다. 매일 사무실 지하의 골프연습장에서 30분∼1시간 연습을 하고, 한달에 1, 2번 라운딩을 하다보니 주말에 영화관을 찾는 일은 거의 없다. 한달에 골프연습비용 20만원, 라운딩비용 40만원으로 총 6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월 400만원 이상 수입을 올리는 미혼의 조씨로서는 골프비용이 그리 부담되는 것은 아니다. 주말에는 강원 원주시에 있는 오크밸리 등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곳으로 홀로 여행을 떠나거나, 인터넷 골프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골프를 한다.

조씨는 SBS 골프채널의 인터넷사이트에 개설된 ‘칠공팔공’(70, 80년대 출생한 골프 동호인 모임), 프리챌의 전산인 아마추어 골퍼들의 모임인 ‘e투게더’ 등에서 활동한다. 골프채널 이외에는 가끔 음악채널인 m.net 또는 KBS위성채널의 클래식공연 실황을 시청한다. 어릴 적 6년 동안 피아노를 배웠고, 2년 전부터는 바이올린도 배우고 있다. MBC 일일연속극 ‘인어아가씨’도 시청한다.

●다국적기업 대리 CNN보며 포천 구독

다국적 기업인 한국피앤지(P&G) 마케팅팀 고규범 대리(28)는 밤 10시쯤 귀가해 하루 1시간∼1시간반 꼭 CNN을 시청한다. 해외뉴스를 신속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 해외유학파가 아닌데도 본인의 꾸준한 학습과 노력으로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고씨는 CNN 외에도 포천과 타임지를 정기구독하고, 인터넷에서는 에스콰이어, 포브스 등의 잡지를 검색해 읽는다. 서울대 화학공학과 출신인 그는 “테크놀로지의 빠른 발전을 비즈니스적 측면에서 조망해볼 수 있기 때문에 외국 방송을 의도적으로 시청한다”고 말한다. 업무상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인터넷에 접속하는 고씨는 친구들과는 인터넷메신저(MSN)로 대부분 대화하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도 하루 5번 이상 빠른 손놀림으로 ‘날린다’. 온게임넷의 게임중계, 동아TV의 ‘프렌즈’ 등을 즐겨보며 AFN의 ‘투나잇쇼’와 ‘레터맨쇼’도 본다.

●‘온게임넷’에 채널고정 게임동호회 활동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인 한재후씨(27)는 온게임넷을 하루 2시간 시청한다. 오후 8시 ‘올스타전’의 시청을 놓치면 밤 12시 재방송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본다.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와 게임 등을 자유자재로 즐기는 한씨는 매주 토요일 밤 9시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20, 30대 게임동호회 회원들끼리 모여 농구시합을 한다. 농구가 끝나는 밤 11시반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는 인근 게임방에서 함께 스타크래프트 게임전을 벌인다. 인터넷게임은 사람들끼리 한데 모여서 할 때야말로 묘미가 살아난다. 한씨는 온게임넷 이외에도 MBC ‘야인시대’와 ‘CSI과학수사대’, 게임채널인 겜비시, 스포츠채널인 MBC-ESPN, 영화채널인 OCN과 Home CGV를 시청하고 있다.

신문은 포털사이트를 이용해 인터넷으로 본다. 개인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데 하루 1시간 정도 걸리고, 한달에 1, 2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 최근에는 맷 데이먼이 출연한 액션영화 ‘본 아이덴티티’를 봤다.

●한상진교수는 ‘디스커버리채널 마니아’

서울대 사회학과 한상진 교수(57)는 다큐채널 디스커버리채널 관계자들 사이에서 ‘디스커버리채널 마니아’로 통한다. 한 교수가 이 채널에 프로그램 복사를 자주 의뢰하기 때문이다.

9월 디스커버리채널이 ‘세계를 바꾼 날-9·11 그 이후’미국 9·11테러 사건 이후 아랍권 국가들의 대(對)미국관을 다룬 프로그램인 ‘특집 9·11 테러’를 방송한 이후 이 채널에 더욱 각별한 애정을 느낀다는 한 교수는 “미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다문화주의적인 시각을 흡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교수는 귀가 후 9시 뉴스를 본 뒤 디스커버리채널을 본다. 관심이 있는 프로그램일 경우 집중해서 시청하고, 그렇지 않다면 프로그램을 틀어놓은 상태에서 독서를 한다. 다른 채널의 경우 드라마나 오락채널은 거의 시청하는 일이 없고 주로 YTN, 히스토리채널,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논픽션 채널을 선택한다. 한 교수는 이번 학기 서울대의 ‘NGO 세계시민사회’ 강의에서 자신이 직접 녹화한 디스커버리 채널 프로그램을 수업교재로 활용하고 있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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