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천안문광장 불경죄?…'북경내사랑' 고치고 또 고치고

  • 입력 2002년 11월 5일 18시 06분


한중합작드라마 ‘북경내사랑’사진제공 KBS
한중합작드라마 ‘북경내사랑’사진제공 KBS
한국과 중국의 합작 드라마 바람이 일고 있다.

KBS와 중국 CCTV는 내년 8월 ‘북경 내사랑’을, 12월경에는 ‘비천무’를 합작드라마로 제작해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방송한다. ‘북경 내사랑’의 주연은 한국 탤런트 고수와 중국의 여배우 랴오 샤우친이고 그룹 ‘베이비 복스’의 김이지 등이 출연한다.

그러나 중국은 드라마 제작때 요구 조건을 까다롭게 내걸어 국내 제작진이 곤혹을 겪기도 한다. ‘북경 내사랑’의 제작진도 전체 대본과 촬영 내용에 대한 중국측이 수정 요구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중 한 사례는 ‘천안문 광장에 대한 불경’은 안된다는 것. ‘북경 내사랑’의 첫 회에는 고수가 납치돼 천안문 광장에 홀로 남겨진다는 설정이었다. 그러나 중국측에서 천안문 광장을 그렇게 이용하는 것은 불경이라며 난색을 표명하는 바람에 장소가 북경역으로 바뀌었다.

중국측은 또 ‘제주도’와 ‘월드컵’을 넣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2002 한일월드컵에서 중국 대표팀이 한 골도 못넣고 연패하자 중국측은 고수가 중국 청년들에게 축구를 가르쳐 승리하는 장면이 불쾌하다며 삭제를 요청했다.

고수를 괴롭히는 조선족 출신 깡패의 캐릭터는 중국의 ‘소수민족 우대 정책’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바뀌어야 했다. 소수 민족(조선족)이 나쁘게 비칠 우려가 있는 내용은 방영할 수 없다는 중국의 심의규정 때문이다. 이밖에도 탈북자 이야기, 중국측의 밑바닥 서민들의 삶에 대한 묘사 등에 대한 중국측의 반발로 전체 대본 중 30∼40%가 수정됐다. 김태균 작가는 “극중에서 연인에게 ‘초록색 모자’를 선물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중국 남자들은 절대 초록색 모자를 안쓴다고 하더군요. 중국 남자들에게 초록색 모자는 ‘내 마누라는 바람피운다, 나는 바보다’라는 의미라고 하더라”며 양국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은 수입 드라마에 대한 심의를 엄격히 하고 있다. SBS드라마 ‘모래시계’도 1년간의 심의 끝에 ‘폭력성’을 이유로 수입이 불허됐다. 중국은 체제나 국민 정서에 반한다고 보이는 한국 드라마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수정과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문화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2000년도 방송프로그램 해외수출국중 대만이 249만4000달러(20.2%), 중국이 248만7000달러(20.1%)로 각각 1,2위를 차지했다. 일본과 미국은 각각 9.7%, 0.9% 수준으로 그만큼 중화권이 방송 프로그램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KBS의 윤용훈 책임프로듀서는 “국내 드라마 제작비가 증가하면서 국내 수요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며 “중국 등 해외 판로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를 계속 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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