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나대로선생' 17일로 7000회

  • 입력 2002년 9월 16일 12시 02분


“만화는 재미 있어야 하고 특히 4컷짜리 시사만화는 마지막 반전으로 통쾌함과 함께 진한 여운을 남겨야 한다”고 말하는 ‘나대로선생’의 작가 이홍우화백.이훈구기자 ufo@donga.com

“만화는 재미 있어야 하고 특히 4컷짜리 시사만화는 마지막 반전으로 통쾌함과 함께 진한 여운을 남겨야 한다”고 말하는 ‘나대로선생’의 작가 이홍우화백.이훈구기자 ufo@donga.com

얼굴 절반을 차지하는 둥근테 안경에 주먹만한 코, 어딘가 모자라는 듯 하면서도 순진함이 가득한 얼굴, 그러면서도 할 말은 하고야 마는 고집스런 사내. 이 친숙한 얼굴은 동아일보의 4컷짜리 연재만화 '나대로선생'의 캐릭터다.

우리 시대의 자화상 '나대로선생' 만화가 17일로 7000회를 맞는다. 나대로가 태어난 때는 군부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80년11월11일. 이후 22년동안 '내 갈대로 간다'는 뜻 그대로, 양심을 굽히지 않고 이 땅의 민초(民草)들과 함께 희노애락을 같이해왔다.

불과 4컷으로 가장 극명하게 시대상을 보여주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작가 이홍우 화백(54·동아일보 편집위원·한국시사만화가회 회장). 그는 4컷 만화 '나대로선생'의 매력으로 7000회 소감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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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처럼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지니면서도 마지막 순간에 반전을 이끌어내는 것. 그래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 그게 매력이죠."

1967년 서라벌예대 2학년 때 대전의 중도일보에 '두루미'를 그리면서 시작된 4컷 만화 인생. 그가 동아일보 시사만화를 맡았을 때는 불과 32세. 그 파격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아이디어 구하랴, 마감 시간 맞추랴, 그의 하루 하루는 피 말리는 작업의 연속이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특유의 근성과 사명감으로 나대로를 지켜왔다.

'나대로선생'은 탄생부터가 험난했다. 80년11월11일자 첫회는 '명단에서 빠진 새 인물 인사드립니다'였다. 당시는 신군부가 '정치규제자 명단'이 발표됐을 때였다. '나대로선생'은 체제저항이라는 이유로 삭제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이 화백은 검열에 맞서 일곱번을 다시 그리는 투지 끝에 결국 이 만화를 실었다.

통렬한 질타와 풍자는 그치지 않았다. '국방위 회식사건'의 장본인이 장군들이었음을 최초로 폭로한 86년 3월24일자, '6공6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6공의 실정(失政)을 풍자한 91년11월29일자 등. 이 화백은 '국방위 회식사건' 만화로 검거를 피해 몸을 숨겨야 했다. '6공6신' 만화는 야당의 당보와 야당의원 선거홍보물의 단골 메뉴가 됐다. 미국 정보기관은 한국 정세 보고서에 '나대로선생'을 인용하기도 했다.

최근엔 '나대로선생'의 내용이 현실에서 그대로 이뤄진 경우도 있다. 2000년 6월24일자는 '민주당 의원 3명 꿔주면 되지 않으냐'는 내용의 풍자였다. 반년 뒤인 12월30일 똑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올 4월12일자엔 '홍단 고스톱'으로 대통령 아들 3형제의 비리를 풍자하자, 곧이어 다른 언론에 '홍단 고스톱이 장안의 유행'이라는 기사가 잇달아 실렸다.

그러나 "정치 풍자로 독자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 드리려고 노력했지만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를 상대적으로 적게 다루어 아쉽다"고 말하는 이 화백. 그는 "1996년엔 한 독자가 수재를 다룬 나대로를 보곤 '휴가를 포기하고 수재민과 아픔을 함께 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와 휴가비 100만원을 보내왔다"면서 "앞으로는 정치풍자 뿐만 아니라 좀더 일상에 파고 들어 감동과 재미를 주는 나대로를 자주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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