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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28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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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말기 식민통치를 맡았던 조선총독 3인. 왼쪽부터 7대 미나미 구로, 8대 고이소 구니아키, 9대 아베 노부유키총독. 동아일보 자료사진
29일은 일본이 한국을 강제 합병한 이른바 ‘국치일(國恥日)’. 때 맞춰 나온 ‘식민통치의 허상과 실상’(혜안)에는 1936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 말기 10년, 총독부 정무총감을 지낸 3인의 육성 증언이 담겨있다. 정무 총감은 총독을 보좌하며 한국 지배를 실질적으로 지휘 감독했던 2인자다.
이 증언에서 일제 고위 관료들은 한민족을 자신들과 동화하는데 가장 심혈을 기울였고 자신들이 패전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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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大和) 민족 안으로 총 2400만명의 새로운 조선민족이 들어와 일본민족에 더해진다. 그들 신생민족이 새로이 우리와 하나가 된다, 만들어진다’.
‘(패전으로) 끝장나지 않고 (식민지배가) 계속 이어졌다면, 일본 모국(母國)과 모종의 관계하에 각각 정치적으로 하나의 민족 자주성을 유지하면서 동아시아 지역에서 운명을 함께 하는 관계, 그것이 이뤄지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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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총독 정치는 조선인의 수준, 인간으로서의 수준을 높인다는 방침을 일관되게 추진했고 다른 외국의 경우처럼 토착민을 우매한 상태로 헤매게 하고 그래서 본국에만 이롭게 하려는 따위의 생각으로 정치(政治)하지 않았다. 우리의 목표는 매우 친절한 행정을 펴서 (한국인을) 신속하게 훌륭한 국민, 선량한 국민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식민통치의 최고 지배층이었던 이들의 증언은 당연하게도 반성보다는 일본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자신들의 선한 통치노력이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한탄도 있고 일본의 패배가 오만 때문이었다는 자책도 나온다.
‘저 민족이 시시해, 낙제생이다 라고 하면서 일본은 이러쿵 저러쿵 자만하고 있었지만 그 세계 전쟁에 뛰어 들어 가서는 뭔가, 이 꼴이. 다 우리가 덕이 없어서다. 우리에겐 총명함이 부족했다’.
책은 피지배와 지배라는 상반된 경험을 가진 두 나라가 식민의 역사를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 지 보여주는 단초를 제공한다.
책의 출발은 일본의 민간 역사연구 소모임 ‘조선 근대사료 연구회’ 소속 대학생들이 58년부터 62년까지 조선 총독부 고위 간부 120여명을 일일이 만나 증언을 듣는 것에서 시작됐다. 릴 테이프 480개, 모두 800여 시간 분량의 녹음 테이프는 94년 가큐슈인(學習院)대 동양문화연구소에 넘겨져 보관돼 오다 2000년 8월 공개됐다. 당시 일본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연구소는 얼마 뒤 3명의 정무총감 증언만 모아, ‘15년 전쟁하의 조선통치’란 제목으로 책을 만들었다.
갓 스물을 넘긴 대학생들이 오직 역사에 대한 관심 하나로 총독부 고위관료들과 500여회의 인터뷰를 하면서 400여 타래가 넘는 육성 녹음자료를 만들었던 시기는 일본 역시 패전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50년대 후반이었다. 지배자의 여유란 그런 것이었을까. 그 젊은이들이 지금 일본의 중추 세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감동을 넘어서 소름이 돋는다.
번역자 정재정 교수(서울시립대 국사학)가 역자 후기에 남긴 말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당시를 살았던 2500만의 한국인들도 이들처럼 증언할 것인가? 식민통치가 진심에서 우러난 선정(善政)이었다는 것을 2500만 한국인들도 받아들이는가? 이제 입을 열고 증언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흩어져 있는 역사자료를 탐사하는 데 골몰하기보다 하루라도 빨리 살아있는 인간의 증언을 기록하는 것이 더 빠르다는 것을 이 책은 웅변하고 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