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서가 바뀐다]100만부 히트 ‘누드교과서’의 서울대생들

  • 입력 2002년 8월 22일 16시 08분


‘대입수험생 눈높이에 맞춘 참고서’ 바람을 일으킨 ‘누드교과서’제작진이 서울대 교내 잔디밭에 모였다. 왼쪽부터 김윤정(화학 저자) 김두산(국사 저자) 조은민(편집제작 담당) 이영재(언어 저자) 나희정씨(홍보 담당).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대입수험생 눈높이에 맞춘 참고서’ 바람을 일으킨 ‘누드교과서’제작진이 서울대 교내 잔디밭에 모였다. 왼쪽부터 김윤정(화학 저자) 김두산(국사 저자) 조은민(편집제작 담당) 이영재(언어 저자) 나희정씨(홍보 담당).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누드교과서.’ 교과서를 벗겨본다는 의미다. 지난해 8월 사회·과학탐구과목이 처음 출판된 이래 언어, 외국어, 수리영역을 거쳐 이달 새로 낸 과목별 문제집까지 ‘누드교과서 시리즈’는 1년새 100만부가 팔렸다.

서울대 재학생들이 ‘수험생의 눈높이’에 맞춰 쓴 과목별 참고서다. ‘누드교과서’의 성공 덕분에 요즘은 대학생들이 참고서 필자로 나서는 경우가 많아졌다. 몇 년 전까지 대학생 필자가 쓰는 참고서류가 대학입시 성공수기 또는 ‘암기노트’류의 보조교재였던 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출판 초창기에는 제목과 표지를 잘못 이해하고 구입한 중년남성들의 항의전화가 출판사로 걸려오기도 했다. 표지에는 통조림을 ‘따 먹는’ 장면, 과일을 ‘벗겨 먹는’ 장면이 담겨 있다.

“교과서든 참고서든 너무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딱딱하고…. 과외선생님이 해설해 주는 것처럼 구어체를 써서 학생들에게 다가갔죠.”

국사과목을 집필한 김두산씨(22·법학과 4년)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 지금껏 국사시험에서 틀려 본 기억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역사 속 인물과 정책은 이익이나 돈을 따라 움직인다’는 나름의 노하우를 적용해 역사현상들을 유기적으로 연관지어 설명한다. 문장도 ‘여기서 잠깐∼’ ‘∼하고 있다지요, 아마’ ‘예를 들어 알아볼까요?’ 따위의 치기발랄한 말투부터 ‘외울 게 많죠?’ ‘∼해야 한다는 말씀!!’ 같은 후렴구가 숨차게 지식습득을 해야 하는 학생들을 조금은 달래준다.

‘누드교과서’를 출판한 이투스사에서는 참고서 저자들을 ‘작가’라고 부른다. 책 기획단계에서 서울대 교내에 대자보를 붙이고 인터넷에 공고를 내 서울대생을 상대로 글솜씨 오디션을 했다. ‘종교개혁’이나 ‘주기율표’ 등 교과서에 나오는 개념을 주고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라’는 문제를 냈고, 시험에 합격한 학생들이 ‘작가’로 뽑혔다.

권당 대개 400페이지 이상으로 다른 참고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두꺼운 것도 작가들의 시시콜콜한 ‘썰’과 설명이 많기 때문이다. 생물 ‘자극과 반응’ 단원에서는 영화관에 가서 이성친구와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다가 손을 잡게 되는 에피소드를 통해 오감(五感)에 대해 설명한다. ‘생식주기와 임신’ 단원에서는 ‘여자들이 한 달에 한 번 마법에 걸리는 이유를 알아보자’며 학생들을 유혹한다.

‘작가’들은 현재 대학 재학생이지만 인터넷과 해외체류경험 등의 노하우를 통한 자료수집능력은 전문가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화학을 집필한 김윤정씨(21·화학교육과 2년)는 캐나다 공립학교에서 쓰는 화학교과서의 그림과 설명법을 참고해 ‘이온결합’ 같은 어려운 원리를 ‘크리스 크로싱’이라는 개념으로 쉽게 소개했다. 월간 ‘과학동아’에서 발췌한 실용문들을 참고자료로 올리기도 했다. 언어영역을 쓴 이영재씨(23·국문과 4년)는 ‘신문 사설 뒤집어 보기’를 통해 글을 비판적으로 읽게 하는 코너를 특화했다. 이씨는 “고교와 대학의 교과서와 교재, 백과사전, 예전 학교와 학원 강의시간에 배운 것들을 취사선택하니 나름대로 알찬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됐다”고 말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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