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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20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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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머리를 수박처럼 도려낸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마약의 폐해를 극명하게 표현한 ‘금단의 과일’(1995).사진제공 김혜경디자인연구소
정치 선전의 도구, 공공 목적의 캠페인 수단이기도 하고 상품 광고나 기업 홍보의 수단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포스터는 한 시대의 역사적 문화적 상황, 대중의 기호를 반영한다. 포스터를 통해 20세기를 들여다보는 전시가 마련된다. 동아일보사와 세종문화회관 주최로 23일부터 9월16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는 ‘20세기 세계의 포스터 100년-예술과 사회의 대화’. 포스터 100년의 역사에서 디자인의 흐름을 살펴 보고, 포스터의 메시지를 통해 20세기 사회문화사까지 엿볼 수 있는 행사다.》
전시 포스터는 일본의 다케오(竹尾·종이유통회사) 컬렉션 3200여 점 중에서 엄선한 120점. 근대 포스터의 문을 연 프랑스 쥘 셰레의 1879년작 ‘르 지라르 공연’ 포스터부터 최근작까지 다양한 포스터가 선보인다.
전시는 8개의 테마로 나뉜다. 정치 선전이나 사회 캠페인 등 공공 포스터, 기업 이미지 홍보 포스터, 패션 광고 포스터, 관광 관련 포스터, 상품 광고 포스터, 예술과 상업이 조화를 이룬 포스터, 영화 공연 등 엔터테인먼트 홍보 포스터, 박람회 올림픽과 같은 각종 행사 포스터 등.
공공 포스터 중에선 마약 금지를 호소하는 ‘금단의 과일’(벨로루시·1995)이 단연 압권이다. 사람의 뒤통수와 깊게 파낸 수박의 이미지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이 작품은 마약의 폐해를 극명하게 전해주는 포스터. 이미지의 강렬함과 섬뜩함이 보는 사람을 전율케 한다. 이밖에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전시회’(소련·1929), ‘볼셰비키 농업정책은 사회주의 투쟁’(소련 ·1931), ‘파리 5월 혁명’ 포스터(프랑스·1968)도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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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홍보 포스터로는 IBM 포스터(미국·1981)가 돋보인다. 검은색 배경에 사람의 눈과 벌, 알파벳 M만 늘어놓았다. I 와 B 대신 동음이의어인 Eye(눈)와 Bee(벌)를 그려넣은 포스터로, 익살이 가득한 파격이었다. 당시 이 회사 중역들은 포스터를 보고 분노했지만 이 작품은 포스터 디자이너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제시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머그로스 스쿨 클럽의 홍보 포스터(스위스·1988)는 계단과 상승의 이미지를 간결 명료하게 표현해 학교에 대한 신뢰감을 주는 작품이다.
상품 광고 포스터로는 머리카락으로 물음표를 만들어 호기심을 자극한 판틴 샴푸 포스터(스위스·1945), 지역마다 새로운 컨셉을 선보이는 ‘앱솔루트 보드카’ 광고 포스터(스웨덴 ·1986)가 눈길을 끈다.
전시작을 보면 포스터야말로 정보와 예술이 만나는 예술 장르임을 실감할 수 있다. 포스터의 간결 명료한 메시지와 고도로 상징적이고 미적인 이미지를 두루 체험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전시의 매력이다. 전시 주관은 두성종이, 기획은 김혜경디자인연구소가 맡았다. 02-399-1772,3, 738-2134
▼포스터의 사회학, 19세기 후반 등장… 1차대전때 선전매체로 부상▼
포스터의 기원은 고대에서 도망친 노예를 체포하려는 포고문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대량 인쇄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 메시지를 전파한다는 개념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진정한 포스터는 19세기 후반에 등장했다. 프랑스의 쥘 셰레가 1869년 제작한 ‘발렌티노 무도장’ 포스터가 최초의 근대적인 포스터인 셈.
포스터는 20세기 들어 문자를 도안하는 레터링과 지면을 배치하고 편집하는 레이아웃 등의 발전에 힘입어 비약적 성장을 이룩했다. 포스터가 선전 매체로 이용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젊은 여성을 통해 남성들의 참전을 유인한 ‘해군은 당신을 필요로 한다’(미국·1917)와 애국심을 자극한 ‘조국은 당신을 필요로 한다’(영국·1914) 등의 참전권유 포스터들이 대표적이다.
1937년 파리만국박람회의 포스터는 본격적인 산업사회의 도래를 알리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공장의 연기가 장미로 변하는 모습을 그린 이 포스터는 당시 산업사회의 풍요로움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30∼40년대엔 유럽의 관광인구가 늘면서 관광과 교통수단 홍보포스터가 많이 등장했다.
이후 포스터는 전문 디자이너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예술성까지 확보해 미술의 한 장르로 발전해나갔다. 포스터는 순수 미술 중심의 미술계를 자극해 미술과 일상의 결합, 예술과 정보의 만남을 이뤄지게 만들었다. 응용미술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도 포스터 덕분.
20세기말에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종이 포스터의 역할은 줄어들었다. 대신 지하철 안이나 역에 붙일 수 있도록 점착력 있는 종이에 인쇄한 포스터들이 늘고 있다. 이는 지하철이 대중교통으로 자리잡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인 동시에 대중과 호흡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포스터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