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감동 詩語로 승화…중견시인 '문학사상' 경축시 발표

  • 입력 2002년 6월 27일 18시 29분


‘그래 다 나았다/우리 역사의 통증은 사라졌다/붕대를 풀고 검은 딱지를 거둬내고/새 살이 돋는 새로운 탄생의 힘을/저 결빙의 지하에서 우리는 길어 올렸다/그래 우리는 찾았다/아 대한민국!’(신달자, ‘이제 마침표를 찍어라’)

11명의 원로·중견 시인이 11명의 태극전사들에게 보내는 감격의 월드컵 4강 진출 기념 축시를 띄워냈다. 참여 시인은 김후란 나태주 노향림 문정희 송수권 신달자 오세영 유경환 유안진 이가림 최동호씨. 11편의 경축시는 다음달 1일 발간되는 월간 ‘문학사상’ 7월호에 실리게 된다.

최동호 시인은 국가대표팀 거스 히딩크 감독을 ‘전생의 하멜처럼 머나먼 서쪽에서 온 달마’로, 그와 매 경기 선발 멤버를 포함한 열 두 명은 ‘열두 마리 천마총의 천마’로 묘사했다.

그는 “‘달마가 동쪽에서 온 까닭을 묻는 질문에는 진리란 장소를 넘어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깨달음이 들어 있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들의 내면에 숨어있는 열정과 힘을 찾아내 분출시켰다는 점에서 그를 서쪽에서 온 달마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시인은 “선수들을 천마로 묘사한 것은,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 민족이 좁은 지역성과 갈등에서 벗어나 천수백년 전 신라인들처럼 세계로 웅비해 나가자는 꿈을 그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안진 시인은 ‘지축도 흔들렸다 뻗치는 승리 승리의 환희로/태극전사 발끝에서 놀아라 공이여 지구여!’(멋지다 눈부시다 황홀하다)라는 시어로 온국민의 환희를 묘사했다.

송수권 시인은 월드컵으로 하나된 온국민의 힘이 상처입은 역사의 치유력으로 작용할 것을 기대하며 ‘서구 열강의 콤플렉스도 떨쳐버리고/질곡의 역사도 활활 벗어던지고/내친 걸음 한 달음에 가자/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또 한번/황금 이마와 거미손 지칠 줄 모르는/황금의 두 발로 새로 쓴 4강 신화’(4강을 넘어 세계를 넘어)라고 노래했다.

김후란 시인은 ‘광대한 녹색 그라운드에 꿈꾸던 용이 일어서고/동양의 심장이 힘있게 뛰었다/쏟아지는 빗줄기도/폭발하는 태양도/두렵지 않았다’(우리는 뛰었다 그리고 이겼다)고 11명 전사들의 투혼을 칭송했다.

‘문학사상’ 관계자는 “한국팀이 전국민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꿈같은 승전보를 연속으로 알려오고 있는데 대해 문학계의 가슴벅찬 목소리를 전해야겠다고 생각, 급히 경축시를 청탁해 특집으로 싣게 됐다”고 밝혔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공놀이하는 달마의 붉은 심장▼

-최동호-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전생의 하멜처럼

히딩크는 머나먼 서쪽에서 온 달마

그의 눈길이 머무는 찰나 우리들의 심장 붉게 열리고

그의 손끝이 향하는 곳 승리에 굶주린 전사들이 돌진한다

골문을 향해서 대포알처럼 날아간 포탄이 터질 때마다

용장의 주먹은 하늘 깊은 곳을 꿰뚫는다

지축을 뒤흔드는 사람들아 공놀이하는 달마에게 묻지 마라

그들이 왜 세계의 그라운드를 천리마처럼 질주하는가를

세계의 중심에 백의민족의 열정을 폭죽처럼 피워 올리리니

달마는 왜 왔는가, 달마는 달마가 아니라

푸른 잔디밭에 용수철처럼 튕기다가 멈춘 공 하나

밤새 소리질러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목구멍에선

새빨간 꽃 한 송이 누구나 환희처럼 피어나고

우리 모두가 승리의 감격을 벅찬 가슴에

영원한 불덩어리처럼 새길 지니 결코 멈추지 마라

승리의 전사들이여, 천년의 잠에서 깨어난

열 두 마리 천마총의 천마들은 바야흐로

암흑의 질곡을 발굽 아래 떨쳐버리고

뭉게구름을 박차며 달려나가 떠오른 태양이여

아아 우리들의 영광, 새 세기의 첫 승자여 불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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