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축구 히딩크 '파워 입담'

  • 입력 2002년 6월 27일 16시 28분


거스 히딩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인터뷰를 들은 사람들은 그의 독특한 수사에 적잖이 감탄한다. 일부 어법상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합니다” 대신 ‘새로운 자극’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Spain is in my heart”나 “I’m still hungry” 같은 코멘트는 원어 그대로 회자되기도 했다. 히딩크의 방송 인터뷰를 지켜 본 영어학자들은 대체로 “단문을 즐겨 쓰기 때문에 메시지가 분명하고 강렬하게 전달된다. 가끔씩 그의 수사에 개성을 부여하는 독특한 어휘 선택이 눈에 띈다”고 평한다.

●히딩크 수사학〓“It’s a real classy game(정말 훌륭한 게임이었습니다).”

히딩크는 8강전에서 스페인을 물리친 후 superior, stylish의 뜻이 중첩된 ‘classy’란 단어를 썼다. ‘classy’는 영어권 나라에서도 일상어로는 잘 쓰지 않는 개성적인 어휘.

‘잘했다’는 말도 ‘very good’ 정도의 흔한 표현은 잘 고르지 않는다. “It’s a tremendous achievement(굉장한성과다)”,“It’sunique what the players have done(우리 선수들의 경기는 독특했다)” 식이다. 대 미국전이 끝나고 “좋은 찬스를 여러 번 놓쳤다”고 했을 때 그는 “We deserve to win because we created such beautiful chances”라며 ‘아름다운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대 독일전 후에는 우리 선수들이 초반부터 독일선수들에게 ‘너무 긴장했다’는 것을 “We were too respectful(우리는 독일선수들을 너무 존경했다)”이라고 돌려말했다.

‘영웅’이라는 칭송에 대해 그는 입버릇처럼 “I’m just a normal, humble, hardworking man”이라고 말하며 ‘평범한 사람일 뿐’임을 강조한다. 그가 경기를 묘사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표현 중 일부는 ‘지배하다’는 뜻의 dominate와control이다. 앞서갔다, 처졌다 등으로 게임 운영을 부분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전체 묘사에 중점을 둔다. 그는 강팀과 싸울 때는 한국축구가 ‘주류’가 아니었던 점을 강조하며 “We are outsiders(우리는 아웃사이더다)”라고 했다.

선수들을 가리킬 때는 소년(boy)이나 개(dog)로 즐겨 부른다. 그가 인터뷰 때마다 빼놓지 않았던 말은 “우리아이들을매우자랑스럽게 생각한다(I’m very proud of the boys)”다. ‘dog’는 애칭(愛稱)으로 즐겨 쓴다. 대 폴란드전 뒤에는 ‘young responsible dogs(젊고 책임감 있는 개들)’라 불렀고 대 독일전을 앞두고는 ‘a bunch of young dogs(한 무리의 개들)’라고 했다. ‘개’는 묵묵히 자신을 믿고 따르는 선수들에 대한 애정을 담은 히딩크의 독특한 호칭 선택이다.

●시적인 압축〓대 스페인전 후에 스페인팀이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자 “The losing team should look in the mirror(진 팀은 거울을 들여다 봐야 한다)”며 패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 것을 주문했다. 대 스페인전을 앞두고는 “Spain is in my heart(스페인은 내 가슴 속에 있다)”라는 말로 스페인을 잘 알고 있음을 나타냈다. ‘16강’이란 1차목표를 이룬 뒤에는 “I’m still hungry”라는 말로 끝없는 승부욕을 내비쳤다. 그는 ‘동어반복’도 싫어한다. 향후 계획을 묻는 기자들에게 ‘내일 일은 내일에…’라는 말을, 대 이탈리아전 뒤에는 “Tomorrow is another day”라 했지만 스페인전 후에는 “What comes tomorrow comes tomorrow”로 표현했다.

●유머와 시선끌기〓지난해 무릎수술을 받아 다리가 불편했을 때 히딩크는 ‘목발’을 ‘chopsticks(젓가락)’라 표현했다. 선수들을 칭찬할 때는 공수를 조율하는 미드필더 이영표를‘operator(전화교환원)’, 강한 압박 수비를 펼치는 김남일을 ‘vacuum(진공청소기)’에 비유했다.

“We will have a little glass of champagne now(오늘은 샴페인 한 잔 하고 싶다)” 등 승리를 자축하겠다는 말을 꺼내기 전에는 “If you don’t mind(여러분이 허락해 주신다면)”가 버릇처럼 나온다. 대 이탈리아전이 끝난 뒤 “What’s your aim now(지금의 목표는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그동안의 성취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담아 “You tell me the aim(당신이 말해보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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